[이코노 인사이트] 한 번 중소기업 근로자는 영원한 중기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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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권혁주
유통팀장

한 아마추어 축구선수가 있다. 프로가 되는 것이 꿈이었지만 일단 입단에 실패했다. 실망은 했어도 포기하지는 않았다. 아마추어 구단에 들어가 더 열심히 뛰었다. 그를 지지해 준 건 ‘기량을 쌓으면 언젠가 프로구단에 스카우트될 것’이란 희망이었다. 노력에는 보상이 따르는 법. 실력이 날로 늘어 웬만한 프로와 견줘도 손색없게 됐다. 그런데 어느 날 날벼락 같은 소식이 들렸다. 프로구단이 아마추어 스카우트하는 것을 제한하는 규정이 마련됐다는 것이다. ‘프로구단이 좋은 선수를 쏙쏙 빼가는 바람에 운영이 힘들다’는 아마추어 구단주들의 항의가 통해서다.

 지어낸 얘기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와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지난 2일 동반성장위원회가 ‘인력스카우트심의위원회’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으로부터 기술·전문인력을 데려가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요즘 힘을 얻고 있는 중기들의 목소리가 받아들여졌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 중기 경영자들의 의견이 100% 반영됐다고 하겠다.

 굳이 ‘중기의 목소리’가 아니라 ‘중기 경영자들의 의견’이라고 한 이유가 있다. 논의 과정에서 경영자보다 더 약자인 중기 근로자들의 입장이 쏙 빠졌기 때문이다. 물론 중기를 평생 직장으로 택한 기술·전문인력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실력을 쌓으면 대기업으로 옮겨 갈 수 있겠지’ 하고 생각하는 쪽이 더 많은 게 엄연한 현실이다. 그런 꿈이야말로 중기 근로자들이 더 열심히 일하게 만드는 원동력 중 하나다. 사정이 이런데 동반성장위는 인력심의위란 것을 만들어 중기 근로자가 대기업으로 이동하는 것을 제한하겠다고 나섰다. 자칫 중기에서 일하는 기술·전문인력의 꿈과 근로의욕을 꺾지나 않을까 두렵다. 또 대기업으로 옮기기 어렵게 되면 아예 첫 직장으로 중기를 택하는 젊은이들이 줄어들 수 있다.

 인력심의위가 이런 ‘중기 제 발등 찍기’ 식 결과를 가져오는 사태는 없어야 한다. 기왕 인력심의위를 만들기로 한 것을 바로 무를 수는 없을 터다. 그러니 앞으로 중기 근로자들의 꿈을 빼앗지 않도록 하는 운용의 묘가 필요하다. 실업축구 강릉시청에서 미드필더로 활약했던 김인성(23) 선수가 최근 러시아 프로축구 1부 리그의 명문 CSKA 모스크바에서 뛰게 된 게 축하할 일이지 가로막을 일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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