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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유주열] 누루하치의 사냥개

중앙일보

입력

얼마 전 강원도에서 일어난 일이다. 강릉의 한 야산에서 치매증세의 80대 노인이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것을 경찰이 발견하여 목숨을 구했다. 당시 노인이 쓰러져 있는 야산이 영하의 날씨였으므로 노인이 기적적으로 생명을 잃지 않은 것은 노인이 키우던 충견(忠犬)의 덕택이었다고 한다. 단지 생후 2개월 된 개가 쓰러진 노인에게 몸을 비비며 자신의 체온으로 노인의 동사(凍死)를 막았던 것이다.

400여 년 전 청(淸) 태조 누루하치(愛新覺羅 努爾哈赤)도 젊은 시절 충직한 사냥개에 의해 목숨을 구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누루하치가 사냥중 길을 잃게 되었고 주변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혼자서 길을 찾느라고 애를 써다가 피로가 겹쳐 정신을 잃고 말았다. 한참 후 정신을 차린 누루하치 앞에는 뜻밖의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정신을 잃은 사이에 산불이 나서 주변이 모두 불에 탔는데 그가 누워 있던 자리만 불이 가까이 오지 않았다. 그는 이상하다고 느끼고 주위를 살펴보았더니 그가 아끼던 사냥개가 근처에 쓰러져 있는데 이미 죽은 목숨이었다. 불이 나자 그 사냥개가 자신의 몸으로 근처의 개울에서 몸을 적셔 정신을 잃고 있는 누루하치의 주변에 물을 뿌려 불길이 미치지 못하도록 한 것을 알게 되었다. 사냥개는 개울과 주인이 누워 있는 곳을 수 없이 왕복하면서 주인의 목숨을 구하고 자신은 과로로 죽었던 것이다.

누루하치는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충견을 후하게 장례 치루고 후손들에게 개를 잡거나 개고기(狗肉)를 먹지 않도록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누루하치 사냥개 이야기의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일반적으로 수렵민족은 개를 가족처럼 생각하므로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사실 청조(淸朝)가 중국을 지배한 270년간 중국에서는 개고기 식용이 제한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농경위주의 한족(漢族)은 전통적으로 개고기를 식생활에 상용하였다. 한(漢)고조 유방(劉邦)의 죽마고우로 나중에 그와 동서지간이 되는 판쿠아이(樊?)는 본래 직업이 개도살 업자였다. 그리고 “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는 한자의 성어를 보면 옛 중국인들이 양고기와 마찬가지로 서민들을 중심으로 개고기도 즐겨 먹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중국의 영향으로 인근 베트남 사람들도 개고기를 즐겨 먹는다고 한다. 최근 불교국가인 태국으로부터 연간 50만 마리의 견공이 베트남에 식용으로 밀수출되고 있다는 기사를 보면 개고기의 인기가 여전함을 알 수 있다.

유주열 전 베이징총영사=yuzuyoul@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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