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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멘토링] 한국산업은행 들어간 박성온양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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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박성온 (서울 일신여상 금융정보과 3)양

1998년 찾아온 경제 위기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사업체를 송두리째 앗아갔다. 그 충격으로 아버지는 당뇨병을 얻었다. ‘자녀들을 먹여 살리겠다’는 마음 하나로 아픈 몸을 이끌고 일용직과 사무직을 오가며 일했지만, 현재까지도 네 식구의 보금자리는 18평 남짓의 반지하방이다. 올해 고졸 공채로 한국산업은행에 합격한 박성온(서울 일신여상 금융정보과 3)양의 집안 얘기다. 중학교 내신 20%대였던 박양이 특성화고를 선택해야 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중학교 내신성적 덕에 박양은 ‘1년 동안 학비 면제’를 보장받고 상고에 입학했다. 입학 후에도 8%대의 내신성적을 줄곧 유지하면서 교사 추천을 받아 3년 내내 학비는 물론 급식비와 방과후 수업비까지 면제받았다. “가정형편 때문에 특성화고에 입학했지만, 대학 입학에 대한 갈망이 있었어요. 최근에는 상당수 대학이 특성화고 졸업생들을 위한 특별전형을 만들면서 열심히만 하면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길도 열려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학원에 다닐 형편이 안 됐던 그는 자신만의 ‘학습 스케줄표’를 만들어 시간을 관리했다. 분기별 공부량을 먼저 정한 뒤 1개월 단위로 학습 목표를 세분화했고 목표 달성을 위해 1주일, 하루 동안 공부할 과목과 단원, 공부 방법을 빼곡히 적은 스케줄 노트를 만들었다. 박양은 “장기적인 학습 목표를 먼저 세우면 기간별로 어떤 공부에 집중해야 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며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학습일기를 쓰면서 잘못된 공부법과 부족한 점을 점검한 게 마인드 컨트롤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에게도 슬럼프는 있었다. 고1 때부터 ‘수능 준비반’에 들어가 대학 입시를 준비했지만, 막상 고3 수험생이 되니 하나, 둘 기업체에 취업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대학에 합격할 수는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어머니, 아버지에게 실망스러운 딸이 되고 싶지 않았다. 고민 끝에 지난해 4월 중앙일보 공부의 신 프로젝트 멘토링 프로그램의 문을 두드렸고, 멘토 언니(강근영·한국외대 용인캠퍼스 중국어통번역학과 4)를 만났다. 매일 오전 1시 멘토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하루 동안 어떤 공부를 했는지’를 말했고, ‘부족한 과목은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하는지’를 물었다. “힘든 시절,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힘이 났어요.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습니다.” 2012학년도 대입에서 입학사정관 전형을 통해 단국대와 명지대에 합격한 그는 중앙일보에 “좋은 학습 태도를 갖고 공부할 수 있도록 멘토 언니를 연결해 줘서 감사하다”는 e-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대학 합격의 기쁨을 누리는 그때, 또 한번의 고민이 시작됐다. 고3 시절 가정형편이 더욱 안 좋아지면서 기초생활수급자가 된 것이다. 결국 ‘집안에 도움이 돼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지난해 11월 중순, 교사 추천을 받아 한국산업은행 고졸 공채에 지원했다. 1차 서류평가와 2차 필기시험을 거쳐 3차 실무자 면접에 올랐다. 대학 입시를 준비한 탓에 자격증이 많지 않아 걱정이 됐다. 그러나 그에게는 고교 시절 열심히 쌓아온 ‘지식’이 있었다. 모의고사에서도 직업탐구영역만큼은 1등급을 놓쳐본 적이 없는 그다. 결국 13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한국산업은행 고졸 공채에 당당히 합격했다. 그리고 오는 24일까지 연수를 마치고 나면 어엿한 은행원이 된다.

박양에게는 꿈이 있다. “취업을 하면서 대학등록금 지원을 보장받았어요. 3년 뒤엔 대학에 입학할 겁니다.” 대학에선 ‘글로벌경영’을 공부할 예정이다. ‘세계적 은행의 차별화된 시스템과 경영전략을 공부한 뒤 해외시장에서 우뚝 설 수 있는 한국발(發) 은행을 만든다’는 게 목표다. 그리고 한국산업은행의 최연소 해외지점장이 되고 싶단다. “힘든 적, 있었죠. 하지만,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한다’는 게 제 좌우명입니다. 내가 있는 지금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언젠가는 꿈이 이뤄질 수 있지 않을까요?” 그가 말을 이었다. “고속도로만 타고 다니는 사람은 그 길이 없어지면 목적지를 찾아가는 데 애를 먹겠죠. 하지만 돌아가는 국도를 아는 사람은 목적지가 어디든 찾아갈 수 있어요. 국도를 돌아 돌아 찾은 저만의 꿈, 이제는 보다 명확해진 목적지를 향해 전진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저만의 고속도로를 만들어 갈 거예요.”

글=최석호 기자, 사진=김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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