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빛깔] 구운돌 공방 김혜경 도예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2면

김혜경 도예가가 작업실에서 생활도자기를 만들고 있다.

“한적한 곳에 자리 잡은 공방이지만 한 번 인연을 맺으면 오래 머물게 돼요.”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덕전리 구운돌 공방 김혜경(56) 도예가. 김씨가 운영하는 구운돌 공방은 용연 저수지가 눈앞에 펼쳐져 있다. 가마가 있는 건물 뒤로 아담한 뜰과 텃밭까지 있어 시골 풍경을 듬뿍 느낄 수 있기도 하다. 그래서 일까. 그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보면 자연과의 조화로움이 역력히 드러난다. 그는 요즘 씨앗 속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씨앗을 주제로 따끈따끈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블루 시리즈 작품이 그것이다. 색화장토와 유약의 결합으로 만들어지고 있는 블루 시리즈는 이미 완성된 것도 있고 구상 중인 것도 있다. 씨앗의 순수함과 끝이 나야 생명이 또 탄생하는 것을 착안해 작품화 하고 있다. 새로운 작품을 만들 때마다 자연 속에서 주제를 얻곤 한다는 그는 “좋아하는 색이 블루다 보니 시리즈 작업을 하게 됐다. 색감과 장식이 강한 느낌이 들지만 자연적인 형체를 나타내 질리지 않는다. 흙으로 지구·토성·금성도 빚어낼 수 있다. 내가 어디에 살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작품이 탄생하는 것도 차별화가 된다”고 말했다.

 그는 초보자들에게 흙 만지는 시간을 즐기라고 가르친다. 많이 만드는 것보다 흙에 열중하라는 의미다. 흙과 교감을 그대로 유지해 나가면서 과정 하나하나를 음미하고 다스리게 한다. “초보자들은 짧은 시간 동안 많이 만들려는 욕심을 가지곤 해요. 그러다 색채, 형태의 다양성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면 신명이 나 작품성에 집중하게 되죠.” 이렇듯 사람과 흙과 더불어 정을 쌓아 가고 있는 혜경씨. 조용히 살아 온 탓에 구운돌 공방은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까지 동고동락 해온 사람들과 회원전을 꾸준히 열고 있다. 동료의식이 강한 그와 뜻이 맞는 공방 회원들은 먼 훗날 ‘실버전’을 열겠다는 꿈을 꾸며 흙 놀이에 빠져 있다. 그는 “열정 만큼은 남에게 뒤지지 않는다. 도자기는 다른 예술 분야와 다르게 작업하는 순간순간 달라지는 게 많다. 구체적인 밑그림 없이 우연성, 즉흥성이 더 빛이 난다. 이런 매력을 뿜어내서 그런지 도자기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든다. 공방을 소문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자연을 벗 삼아 맘 편히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니 많이들 와서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혜경씨는 오로지 집과 공방만 오가며 단순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공방에 발을 딛는 순간부터는 무궁무진한 창작 세계에 빠져 든다. 자연스럽게 작업에 몰두하게 되고 적극적인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 미술을 전공했지만 딱히 관련 있는 일을 찾기 힘들어 절망하고 방황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런 그였기에 도자기와의 만남을 평생 공부로 여기고 관련된 책과 미술 잡지를 닥치는 대로 찾아 읽었다. 이론 공부가 탄탄해졌다는 판단이 설 무렵, 실력이 뛰어난 스승을 만나기 위해 동분서주 했다. 공예가인 이병호 선생과 옹기장인 박민수 선생과의 만남은 그를 더욱 도자기에 심취하게 만들었다. “스승 복이 있었어요. 물레 기초부터 옆에 앉아 가르쳐 주셨죠. 제자를 다른 사람에게 소개시켜 주기 어려울 텐데도 스승님들은 저를 놓아줬죠. 다른 사람에게 배울 수 있는 길을 열어 줬던 거에요. 미국에서 만난 스승까지 특별한 분들의 가르침으로 지금의 제가 있는 거에요.”라며 행복한 인간관계를 털어 놓았다.

 혜경씨는 3회에 걸쳐 개인전도 열었다. 특이한 것은 첫 개인전을 미국에서 열었다는 것이다. 그는 첫 개인전을 열 당시 모든 일을 직접 몸으로 부딪혔다. 그 과정에서 쓴잔을 마시기도 했다. 화장토를 입히는 과정에서 가마 문을 연 순간 한가득 들어 있던 작품들이 깨져 버린 것이다. 결국 화장토를 한국에서 가져다가 작품을 완성해 개인전을 열수 있었다. 그는 “미국은 작가는 작품만 하면 되는 시스템이다. 갤러리를 예약하면 신문기사, 팜플렛, 오프닝 파티까지 진행해 준다. 우리나라도 그런 시스템이면 작품 전시회를 열기가 훨씬 수월 할 것 같다.”며 아쉬움을 내비쳤다.

 갤러리 대관에 대한 고민을 지역 작가들도 할 거란 생각에 그는 요즘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있다. 바로 작업실 공간을 줄여 갤러리를 만들 계획을 세운 것이다. 빠르면 올 여름부터 갤러리 작업이 진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혜경씨의 새해 바람은 ‘사람들과 부대끼며 사는 것’이다. 그는 “운이 좋아 저에게 주어진 공간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과 공유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갤러리가 완성되면 전시회 계획을 앞두고 대관 문제로 속 타는 분들이 적절히 이용할 수 있도록 해드리고 싶다.”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문의=011-9821-6871

이경민 객원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