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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추 수술한 96세 “다리 안 저리니 살 맛 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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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면

제일정형외과 신규철 원장이 척추협착증 환자와 상담을 하고 있다. 부위를 1.5㎝정도만 절개하면 돼 노령층 수술 부담이 크게 줄었다. [제일정형외과 제공]

올해 96세를 맞는 양정길(여·서울 동작구)씨. 4년여 전 다리 저림 증상이 심해 외출을 포기했다. 통증은 눕거나 앉으면 괜찮다가 걸으려고만 하면 심해졌다. 진단 결과는 ‘척추관협착층’. 척추 뼈를 지나가는 신경다발이 낡은 뼈에 눌려 통증이 발생하는 질환이다. 의사는 양씨의 건강상태를 점검한 뒤 수술을 권했다. 너무 고령이라 처음에는 가족도 반신반의했지만 수술한 지 2년이 지난 지금 만족해하고 있다.

 수원에 사는 임영철(가명)씨도 고령 수술에 도전한 케이스다. 올해 94세를 맞는 임씨는 지난해 말 눈길에 미끄러져 척추(흉추 7, 8번)뼈가 골절됐다. 자세를 바꿀 때마다 등 쪽에 심한 통증이 생겼다. 움직임이 줄어 당뇨병이 더 심해지는 등 건강에 적신호가 왔다. 임씨는 사고 2주 뒤 골절된 뼈에 인공 뼈 시멘트를 주입하는 척추성형술을 받고 건강을 회복했다.

 ‘60대 골골’은 이제 옛말이다. 100세 시대에 진입하면서 70~80대도 젊은이 못지않은 체력을 자랑한다. 그러다 보니 과거에는 포기하거나 체념했던 수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제일정형외과병원은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퇴행성 척추질환에 의한 만성통증으로 수술받은 환자 5600여 명의 치료기록을 집계했다. 그 결과 6년 사이 60대 이상 환자는 48.9%, 70대 이상은 44.6% 늘었다. 특히 지난해엔 척추유합술(척추뼈 아래위를 연결해 고정하는 수술)을 받은 환자는 70대 이상 환자가 50.8%, 80대 이상이 10.3%로 각각 6년 전에 비해 31.7%, 5.3% 늘었다.

 

신규철 병원장은 “우리 병원이 어르신들의 퇴행성 척추관절 질환 치료에 특화돼 있어 타 병원보다 수술 환자들의 연령대가 높긴 하다. 하지만 예전과 비교해 보면 그 숫자가 훨씬 많아졌다. 예전엔 찾아볼 수 없었던 모습”이라며 “요즘엔 자식이 말려도 스스로 찾아와 수술을 요구하는 환자도 많다”고 말했다.

 이처럼 고령 척추수술 환자가 늘어난 것은 기초체력이 뒷받침하기 때문.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현재 60세인 사람의 기대여명은 남자가 91세, 여자가 97세다. 신 원장은 “나이는 80, 90대라도 지병이 없는 60대의 건강을 유지하는 어르신이 크게 늘어났다”고 말했다.

 수술법의 발달도 고령자 수술을 가능케 한 주역이다. 10~20년 전만 해도 척추관협착증은 등 부위를 15㎝까지 절개하고 척추의 중요한 뼈(추궁)를 깎는 큰 수술을 해야 했다. 하지만 ‘미세현미경감압술’이라는 수술법이 등장한 후 절개 부위가 크게 줄었다. 환부를 5배까지 확대하는 미세현미경을 집어넣을 공간만 있으면 되기 때문에 피부를 1.5~2㎝만 절개해도 수술이 가능하다. 이 구멍으로 현미경과 칼을 넣어 튀어나온 낡은 뼈와 인대를 제거한다. 기존 절개법의 수술 시간이 3시간이라면 미세현미경감압술은 30~40분으로 짧다. 입원 기간도 3~5일로 크게 줄었다(기존 절개법은 2주 이상). 수술 후 바로 걷는 것도 가능하다.

 마취 기법의 발달도 일조했다. 예전엔 척추수술 시 무조건 전신마취를 해야 했다. 수술 부위가 컸기 때문이다. 전신마취 시엔 인공호흡기를 달아야 한다. 심장병 등 중증 내과질환이 있을 땐 수술 자체가 불가능할 때도 많았다. 최근엔 부분마취를 하면서 수면마취를 병행하므로 환자가 응급상황에 빠지는 위험이 크게 줄었다. 마취약도 좋아져 안전해지고, 후유증이 크게 줄었다.

 마지막은 수술 후 관리다. 신 원장은 “요즘은 무통주사를 써 통증을 줄이고, 염증주사 치료와 무균실 운영으로 사후 일어날 수 있는 합병증을 철저히 관리한다”고 말했다.

배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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