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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다보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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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

세계의 돈 있고 힘 있는 ‘1%’만이 모인다는 다보스포럼은 한 해의 경제 흐름을 전망하고 글로벌 정치경제의 주요 의제를 설정한다는 야심 찬 모임이다. 기업계와 정치인, 언론과 학계의 주요 인사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경제인 페스티벌’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5년간 초빙연사로 참석해온 필자의 눈에는 해가 갈수록 심해지는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더 인상 깊게 남았다. 더 이상 축제일 수 없는 축제의 우울함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문제가 화두였던 2008년 1월의 포럼만 해도 대부분의 참가자는 낙관적 전망을 놓치지 않았다. 세계 자본주의 체제와 미국의 구제능력을 감안하면 크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그해 8월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졌고, 글로벌 경제는 패닉에 빠져들었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마비됐고 탐욕스러운 자본가들이 세계경제를 망치고 있다는 견해가 포럼을 지배했다.

 2010년 포럼에서는 시장의 실패를 정부의 개입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졌다. 재정 확대와 수요 진작, 금융부문에 대한 과감한 자금투입, 철저한 금융 감독 같은 수단으로 실물경제를 살려내야 한다는 ‘다보스 컨센서스’였다. 시장 우선주의와 정부 개입 최소화를 강조해온 이전의 기류와는 완전히 다른 이변이었다. 나아가 그해의 포럼은 주요 20개국(G20)을 통한 국제공조 강화를 강조하며 국가와 국제 거버넌스를 시장에 대한 새로운 대안으로 지목했다. 국가의 ‘보이는 손’이 구원투수로 등판한 셈이다.

 그러나 그리스를 필두로 유럽 국가들이 줄줄이 국가부도 위기에 직면하면서 이러한 환상은 이내 깨졌다. 이들에 대한 구제 여부와 지원 정도를 두고 유럽연합 전체가 큰 내홍을 겪으면서 유로존이 과연 존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마저 고조된 게 2011년 포럼이었다. 이를 기필코 사수해야겠다는 메르켈 독일 총리와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말발’은 전혀 먹혀들지 않았고, 게다가 G20마저 거시경제 안정화와 금융규제에 대한 국제적 합의를 도출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올해 다보스포럼을 지배한 우울함은 그간 시장, 국가, 국제 거버넌스에 대한 신뢰가 이렇듯 차례대로 무너져 내렸기 때문이다. 악화일로에 빠진 거시경제 건전성, 아직도 리먼 쇼크에서 벗어나지 못한 금융자본, 불평등의 심화와 만성적인 실업 확산으로 희생되는 서민들, 대규모 자본에 볼모로 잡힌 정치, 자국 이기주의로 인해 황폐화되고 있는 국제적 협력체계까지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 국면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99%’의 분노와 불확실성에 대한 기업인들의 불안감, 국가를 운영하는 정치인들의 좌절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실패가 가져온 냉엄한 현실인 것이다.

 올해 다보스포럼의 주제는 ‘대전환을 위한 새로운 모델의 모색’이었지만 누구도 이 위기 국면에 설득력 있는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 현재의 위기는 일시적인 것이고 시장이 곧 자기조정기능을 발휘해 극복할 것이라고 보는 이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혹자는 기존의 자본주의가 망해야 슘페터가 이야기한 ‘창조적 파괴’를 거쳐 새로운 대안이 나올 것이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아예 중국식의 국가자본주의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역설적인 처방도 나왔다. 아나톨 칼레츠키의 ‘자본주의 4.0’도 거론됐지만 어느 누구도 이를 명쾌하게 설명해 내지는 못했다.

 분명한 것은 포럼의 창시자인 클라우스 슈바프 회장이 지적했듯 20세기의 자본주의로 21세기의 새로운 도전을 감당하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새로운 대안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와 관련해 『대전환』의 저자인 칼 폴라니가 남긴 성찰은 새삼 의미심장하다. ‘자기조정기능을 가진 시장’이란 망상에 지나지 않으므로 사회가 시장을 통제해야 하며, 시장은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인간의 행복을 실현하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 이 근본적인 성찰 위에 시장, 국가, 그리고 국제 거버넌스에 대한 신뢰를 복원하는 것이야말로 대안의 시작이 아닐까. 이러한 신뢰복원은 도덕적 절제를 아는 시장, 시장 실패를 현명하게 관리할 수 있는 국가, 그리고 집행력 있는 국제공조가 선행될 때 가능한 것이다. 이제 위기 속에 기회가 있고 절망의 시대에 희망이 더욱 돋보이게 마련이라는 역사의 진실에 기대를 걸 따름이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