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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넘은 '담다디' 이상은 "왜 싱글인가" 묻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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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박종근 기자]

“따라가면 안 돼?”라고 물었다. “가수 이상은을 인터뷰한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이 그랬다. 단순히 “연예인을 보고 싶다”는 차원이 아니었다. 노래가 좋고, 음악이 좋고, 거기에 깔린 예술혼이 좋다는 팬들의 ‘우회적인 고백’이었다.

서울 홍대 앞 카페에서 이상은(42)을 만났다. 1m78㎝, 껑충한 키였다. 인사를 건넸다. “올해가 데뷔한 지 꼬박 25주년입니다. 축하합니다.” 그는 싱긋이 웃었다. 그 웃음 뒤로 ‘여러 이상은’이 떠올랐다. 담다디, 공무도하가, 화가 지망생, 라디오 DJ, 지금껏 정규앨범 14집을 낸 아티스트 등. 그래서 딱 하나의 이상은만 묻진 않았다. 이리저리 색깔을 바꾸며 달려온 ‘이상은의 진화’를 물었다. “따라가면 안 돼?”라는 팬들의 고백에, 그 또한 고백으로 답했다.

장소 협찬= 클로리스 홍대점

●‘담다디’에서 ‘아티스트’로 진화했다. 가수 이상은의 날개는 뭔가.

 “내겐 극단적으로 다른 두 날개가 있다. 한쪽 날개는 보헤미안이다. 예술만 추구하며 자유롭고 싶다. 그래서 힐링(healing·치유)에도 관심이 많다. 또 하나는 무척 현실적인 날개다.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실질적으로 돈이 되고, 외국에 나가 유명 음반사와 일을 하는 거다. 내 안에는 그런 두 날개가 함께 있다.”

●지난해 말 이틀간 열린 콘서트의 주제가 하루는 ‘필링(Feeling)’, 또 하루는 ‘힐링(Healing)’이었다. 왜 감정과 치유인가.

 “1988년 강변가요제에서 ‘담다디’를 불렀다. 순식간에 유명해졌다. TV와 라디오, 여기저기서 나를 불렀다. 그때 한 여자아이 어머니가 찾아왔다. 비싼 명품 선물을 내게 줬다. 유치원생인 딸아이가 자폐 증세가 있는데, ‘담다디’를 듣고 밝아지고 좋아졌다고 했다. 나중에는 그 아이가 대학생이 되는 것까지 봤다. 그때 어렴풋이 알았다. 음악에 치유 기능이 있다는 걸.”

●길을 일러 주는 ‘등대’가 됐나.

 “고2 때부터 그룹 들국화와 한영애 음악을 좋아했다. 그 반대편에는 ‘가요톱 10’(가요 순위 프로그램)이 있었다. ‘담다디’를 불렀을 때 나는 대학 1학년이었다. 사방에서 출연 요청이 왔다. 정신이 없었다. 너무 바빴다. 조언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누구도 이걸 선택하고, 저걸 놓으라고 말하지 않았다. 어떤 길을 가라고 일러 주지 않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노래를 부르다 보니 내가 ‘가요톱 10’의 카테고리에 들어가 있더라. 그때 어렴풋이 알았다. 내가 원하는 길과 다르다는 걸.”

●길을 잃었을 때 힘들었나.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과 FM 라디오 심야방송의 DJ를 하는 것, 둘 사이의 차이를 그때는 몰랐다. 힘들었다. 길을 찾는다는 게 이렇게까지 어려운 줄은.”

그래서 이상은은 음악을 접기로 했다. 인기는 올라갔지만 오히려 “마모되고 소모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89년 도망치듯이 미국 뉴욕으로 떠난 이유다. “음악을 포기했다. 대신 미술을 택했다.” 사실 그의 부모도 미대에 가길 바랐다. 그런데 ‘담다디’로 하루아침에 스타가 되니까 부모는 어이없어 했다. 뉴욕의 프랫인스티튜트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그래도 허전했다. 뒤늦게 알았다. 미술도 그에겐 음악을 위한 도구였다. 이상은은 뉴욕에서 일본으로 갔다. 다시 음악을 하기 위해서였다. 거기서 10년간 머물렀다.

●일본에서 무엇을 찾으려 했나.

 “나는 왜 노래를 하는가? 거기에 대한 답을 찾으려 했다. 어릴 적부터 노래를 했고, 어릴 적부터 물었다. ‘나는 왜 노래를 하지?’ 늘 그 물음을 던졌다. 인기도 좋고, 잘나가는 것도 좋다. 그런데 뭔가 의미가 있어야 했다. 그 의미가 뭘까. 그걸 찾고 싶었다.”

 그는 무남독녀 외동딸이다. 어릴 적부터 홀로 있는 것에 익숙하다. 조용한 시간에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일도 잦다. 그래서일까. 그의 눈은 예민하다. 타인의 감정도 예민하게 느끼는 편이라고 했다.

●일본에선 멘토를 만났나.

 “그렇다. 앨범 ‘공무도하가’의 프로듀서 이즈미 와다다. 그는 세계적 록그룹인 핑크 플로이드 공연에서 조명을 맡을 만큼 실력자다. 그가 조언해 줬다. ‘상은이는 레코딩할 때 외국에 나가서 해라. 일상에서 벗어나 사색하는 시간을 가져라. 예술가는 환경이 참 중요하다. 환경이 주어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자신에게 맞는 환경을 자기가 만들어야 한다’. 내겐 그 말이 큰 도움이 됐다.”

●어떤 면에서 도움이 됐나.

 “음악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 줬으니까. 창작-재충전-창작-재충전이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휴식이 그만큼 중요하다. 그런 노하우를 배웠다.”

●휴식과 재충전, 결국 사색이 필요하다는 건가.

 “그렇다. 사색이 필요한 거다.”

●무엇에 대한 사색인가.

 “나의 감정에 대해 사색하는 거다. 나도 많이 우울해 봤다. 그 때문에 가슴 아플 때도 많았다. 내 안에 그런 감정이 생길 때마다 나는 노래로 정리한다. 노래로 정리하고 풀어내는 과정이 내겐 치유의 과정이기도 하다.”

●치유의 과정을 설명하면.

 “누구나 감기에 걸린다. 감기에 걸리면 일단

앓는다. 앓는 것은 똑같다. 다만 나는 앓은 뒤 보고서를 쓴다. 그 보고서가 바로 내 음악이다. 다시 말해 ‘이상은의 삶에 대한 보고서’다. 그러니 내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동시에 나의 인생 보고서를 읽는 거다.”

●보고서에는 주로 무엇이 담기나.

 “상처와 아픔이란 주제다. 앓은 흔적이 담기는 거다. 실제 내가 겪은 이야기, 내가 아팠던 이야기를 할 때 팬들로부터 더 많은 피드백이 오더라. 관념적으로 대충 그렇겠지 하는 얘기 말고 말이다. 그런데 그런 실질적인 이야기를 담는 작업이 쉽지는 않다.”

●왜 쉽지 않나.

 “나의 경험과 감정 그리고 상처를 관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걸 관통하는 통찰의 눈도 있어야 한다. 아픔을 겪을 때도 ‘아! 그렇구나’ 하고 뭔가를 깨쳐야 한다. 그래야 나 스스로 정리를 할 수 있다. 그래야 그 아픔과 상처가 음악이 되고 노래가 된다.”

●평소 내성적인가. ‘담다디 이상은’은 꽤 외향적으로 보였는데.

 “무지 내성적이다.”

한동안 ‘이상은=담다디’의 등식이 성립했다. 그에게 ‘담다디’는 어떤 의미일까. “음악성을 열렬히 추구하던 시기에는 데뷔곡 ‘담다디’가 조금 창피하기도 했다. 감당이 안 됐다. 그런데 돌아보면 ‘담다디’가 있었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나 보려고 애를 썼던 게 아니었을까. 그리 생각하면 ‘담다디’가 참 고맙다.”

●올해가 데뷔 25주년이다. 가수 이상은은 40대다. 돌아보면 어떤가.

 “20대는 승부욕에 불탔다. 내가 한 일들과 싸우느라 고생한 시간이었다. 내 음악을 뛰어넘고 싶었다. 일종의 기록 경신을 꿈꿨다. 30대에는 ‘기록’이나 ‘앨범 판매량’ 같은 욕심을 내려놓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뭔가’를 묻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소박해지는 30대였다.”

●그럼, 40대의 이상은은.

 “갈수록 ‘어른들 말씀이 맞았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어른들께서 늘 ‘보편성, 보편성’ 하셨는데, 이젠 내 것에 그 보편성을 섞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보편성’이란 말이 요즘 나의 키워드다. 그건 인기를 위한 ‘대중성’과는 다른 거다. 이상은의 독창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많은 이의 가슴을 적시는 보편성. 그게 40대 이상은의 숙제다. 준비 중인 15집 앨범도 그런 맥락에서 하고 있다.”

●보편성을 어떻게 섞나.

 “가령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을 보라. 배우 조니 뎁이 나온다. 그는 해적이란 보편성을 띠지만 조니 뎁만의 색깔이 있다. 나도 그런 음악을 하고 싶다. 이상은의 지문이 묻어 있으면서도 많은 사람의 마음을 치유하는 보편적인 음악 말이다.”

●50대 혹은 60대가 됐을 때 ‘이상은의 음악’이 어떠하길 바라나.

 “‘작가 느낌이 물씬 난다’는 얘기를 듣고 싶다.”

 “실례되는 질문을 해도 될까?”라고 포석을 먼저 깔았다. 이상은의 눈이 동그래졌다. “궁금하다. 왜 싱글(미혼)인가?” 의외로 그는 편하게 답했다. “궁금할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음악 하는 게 너무너무 좋다. 15집, 16집 계속 작업을 할 거다. 그 외에 다른 것들이 내 삶에 끼어드는 걸 용납하지 못하겠다. 내겐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많고, 가야 할 길도 멀다. 먼저 나를 찾고 싶다.”

●나를 찾는다는 게 뭔가.

 “내 노래를 찾고, 내 음악을 찾는 거다.” 가수 이상은의 나침반은 분명했다. 필링과 힐링. 그 사이에 난 오솔길을 그는 이미 가고 있었다. 노래로 발자국을 남기면서 말이다.

이상은 

1970년생이다. 재동초등-덕성여중-창덕여고를 거쳐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나왔다. 1988년 강변가요제에서 ‘담다디’로 대상을 받으며 스타가 됐다. 이후 싱어송라이터의 길을 걷고 있다. 보헤미안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의 노래에는 일상에 대한 성찰이 녹아 있다. 6집 앨범 ‘공무도하가’와 7집 앨범 ‘외롭고 웃긴 가게’는 ‘대한민국 100대 명반’에 선정됐다. 현재 라디오 방송 ‘이상은의 골든디스크’를 진행하고 있다.

“라디오 하니 말랑한 게 좋아져 ‘톡식’보단 ‘브로큰 발렌타인’ … ”

지난해 연말 방송사의 밴드 서바이벌 프로그램인 ‘톱(TOP) 밴드’에서 이상은은 특별심사위원을 맡았다.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하는 심사위원이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긴 어렵다. 과연 그는 누구를 지지했을까. 인터뷰에서 물었다. 이상은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뗐다. “나는 ‘브로큰 발렌타인’이 좋았다.”

 ‘브로큰 발렌타인’은 2008년 아시안 비트 그랜드파이널에서 대상을 받은 실력파 밴드였다. 16강전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톡식’과 맞붙었다. “사실상 결승전”이라고 평했던 이 대결에서 ‘브로큰 발렌타인’은 졌다. ‘톡식’은 개성이 넘쳤고, ‘브로큰 발렌타인’은 안정감과 무게감이 있었다.

 이상은은 “내가 20대나 30대였다면 ‘톡식’을 좋아했을 거다. 그런데 40대가 되고, 아침 라디오 방송(이상은의 골든디스크, 오전 11시~낮 12시 91.9MHz)을 진행하다 보니까 취향이 달라지더라. 지금은 좀 더 보편적이고 말랑말랑한 게 좋다. 나도 이젠 어른이 되려나 보다.”

 이상은은 아침 라디오 방송을 2년간 진행하면서 ‘올빼미형 인간’에서 ‘아침형 인간’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이젠 나이가 들었으니 밤늦게 아이들과 놀고 그러면 안 되죠”라고 건네는 농담 너머에서 언뜻 ‘익어가는 이상은’이 보였다. 라디오 방송 진행은 여러모로 그를 바꾸었다. “구구절절한 온갖 사연이 내게 온다. ‘이번에 또 고시에 낙방했어요’ ‘양품점에 손님이 안 들어와요’ ‘여자친구랑 헤어졌어요’ 등 내용도 다양하다. 절반은 ‘이상은씨 좋아해요’이고, 나머지 절반은 ‘사는 게 힘들어요’다. 그럼 격언집 같은 걸 읽기도 하면서 ‘힘내세요. 이럴 때는 이렇게 하세요’라고 얘기해 준다. 나는 그런 게 좋다. 방송과 음악을 통해 사람들을 치유할 수 있다면 좋겠다.”

 이상은의 얘기는 다시 ‘치유’로 돌아갔다. “남의 말을 빌리기보다 내가 살아가면서 겪은 경험들을 노랫말에 녹이고 싶다. 그럴 때 치유력이 더 커지는 법이니까. 결국 노래 가사는 경험에서 나온다. 그러니 내 경험을 깊이 들여다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중은 3년이면 바뀝니다 중요한 건 ‘계속 가는 것’이죠”

“‘나가수’에 나갈 생각은 없느냐?”고 물었다. 이상은은 “나는 가창력으로 승부하는 가수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대신 그는 가수로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얘기했다. “앨범을 내면 대중이 좋아하는 곡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계속 좋아하고 기억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건 다른 장르도 마찬가지다. 아이돌그룹·걸그룹도 마찬가지다. 대중의 열광은 3년마다 계속 바뀐다. 거기에 연연하거나 집착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계속 가는 것’이다. 계속 가려면 매니어 팬들이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팬은 중요하다.”

 이상은은 ‘계속 가는 자’의 심정을 말했다. “사람들은 나이를 먹는 것에 겁을 먹는다. 나이가 들수록 뭔가를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니까. 나도 그랬다. 그런데 어느 순간 ‘없어진 걸 보지 말고, 내게 있는 걸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달라지더라. 40대가 됐을 때 나에게 남은 것들을 소중하게 끌어안자고 다짐했다. 그런데 내게 남은 걸 끌어안으면 안을수록 더 소중해지더라.” 그는 음악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일본에선 10년씩 내다보고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도 그랬으면 좋겠다. ‘계속 가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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