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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130만 명 서울 학생들 혼란에 빠뜨린 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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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한길
사회부문 기자

서울시교육청은 서울시내 1282개 초·중·고를 책임진다. 학생 수만 130만 명이나 되고 교사·학부모를 따지면 그 수는 훨씬 더 많다. 그래서 시교육청 정책은 다양한 의견수렴을 거쳐 신중하게 결정되고 집행돼야 한다. 교육과학기술부·시의회와의 긴밀한 협조와 대화 역시 필수다.

 그런데 26일 공포된 서울학생인권조례는 그렇지 못했다. 조례 내용에 대한 평가는 각자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공포까지의 과정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시교육청·교과부·시의회 모두 교육을 책임지는 위치에 걸맞은 행동이 아니었다.

 시교육청은 10여 일 사이에 조례에 대한 입장을 확 바꿨다. “학교의 혼란이 우려된다”(9일)며 시의회에 조례 재의(再議)를 요구했다가 “매우 잘못된 결정”(20일)이라며 철회했다. 구속됐던 곽노현 교육감이 1심에서 벌금형을 받고 돌아오면서 달라진 것이다. 곽 교육감으로서는 자신의 주요 정책 중 하나인 조례를 빨리 시행하고 싶었을 게다. 하지만 자신이 구속되어 있는 사이 연이은 학교폭력 사태로 학부모·교사는 물론 사회구성원들이 조례에 대해 얼마나 걱정했는지 제대로 헤아려본 건지 의심스럽다. 복귀 첫날 철회는 뭐라 설명해도 무조건 자신의 신념대로만 밀어붙인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이주호 장관이 이끄는 교과부도 제 역할을 못하긴 마찬가지다. 지난해 학생인권조례가 발의돼 시의회를 통과하기까지 석 달간 교과부는 “현장의 혼란이 우려된다”는 논평만 내보냈을 뿐이다. 정말 조례가 큰 문제라고 판단했다면 교과부는 적극적으로 개입할 명분과 권한이 있었다. 장관의 재의 요구가 그것이다. 그런데도 교과부는 우려만 표명할 뿐 재의 요청을 교육청에 떠넘겼다. 그러다가 곽 교육감이 복귀해 재의 요구를 철회하자 부랴부랴 강경대응에 나선 모양새다. 전략적 판단도, 적극적 행동도 부족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이유다.

 시의회도 민감한 조례를 처리하면서 제대로 여론수렴을 하지 않았다. 김상현(민주당) 서울시의회 교육위원장과 위원들은 자체 판단만으로 공청회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서울 교육의 세 축이 실망스러운 태도로 일관한 데 따른 혼란은 고스란히 일선학교가 떠안아야만 한다. 이 혼란은 정작 교육은 뒷전으로 밀어놓고 각자 이념과 정파성에만 매달렸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지금부터라도 학생과 교육을 맨 우선순위에 두고 함께 문제를 풀어가길 바란다.

이한길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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