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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카드/ Green Card

중앙일보

입력

피터위어의 영화세계는 매우 이지적인 면면을 보여준다.

자칫 액션스릴러물로 오인할 수 있었던 '위트니스'의 신중함(이 영화속에서 해리슨포드가 분한 형사의 이미지는 결코 철인이 아니다), 교육의 혁명을 주도하였으나 결국에는 현실에 부딪치는 '죽은 시인의 사회'의 캡틴, 현대사회의 병폐인 미디어의 무자비한 공격에 대한 섬뜩한 고백서인 '트루먼쇼'...

이 작품들은 결코 흥미위주의 작업들이 아니며, 하나같이 영화속 사건이나 인물들의 투쟁끝에 힘겹게 성취되는(다르게 생각해보면 성취되지 못할 수도) 감동적인 드라마이다.

이 영화 '그린카드'역시 마찬가지이다.

미국 영주권을 얻기위한 웃을 수 없는 해프닝들은 이 작품을 코미디로 분류하게도 만들지만 궁극에는 남녀의 사랑으로 극복, 또는 그것을 초월한다는 결론이다.

피터위어의 작품들속에서는 영화속 인물들을 보듬는 따뜻한 시선을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이다.

좌충우돌 티격태격하는 가운데 주인공들의 성격과 사건들을 모두 나열한 후 관객들에게 객관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결론에 도달하려는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이 드러난다.

음악을 맡은 한스짐머의 역할도 바로 이런 것이다.

주인공들의 심리를 파헤치는 참여의 음악이 아니라 주위에서 있는 듯 마는 듯 들려지는 음악이 다수 포진해 있다.

한스짐머가 이런류의 작업들을 해왔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작인 '더록'이나 '미션임파서블 2' '글라디에이터'로 액션영화음악 전문작곡가쯤으로 생각하는 팬들에게는 매우 생소할 수도 있는 음악들이다.

이 영화속에서 한스짐머의 음악은 주인공들의 섬세한 감정변화를 심각한 선율이나 과장된 기교로 표현하지 않는다.

어떤면에서는 목적 그 자체에 충실한 음악으로 충만해 있는데, 예를 들어 두 주인공이 처음 만났던 카페 '아프리카'가 연상되는 부분이면 어김없이 민속적 색채가 가득한 음악이 흘러나오며(민속적색채는 이미 '파워오브원'에서 그 재능이 충분히 입증된 바 있다), 그 이외의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가지 흥미로운 것은 남자주인공이 그녀(앤디맥도웰이 분한)에게 바치는 곡 '브론테를 위하여'의 직접적인 참여인데, 특히 이 곡에서는 제라드빠리유의 허밍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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