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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명절 끝나고 갑자기 "이혼하자" 알고보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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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던 명절증후군이 중년 남성에게도 나타난다고 한다. 의학계에 따르면 피로감과 스트레스는 여성에 비할 바가 못되지만 명절을 맞아 오랜만에 형제와 친척들을 만나도 만사가 귀찮아 눕고만 싶고, 두통·어지럼증·소화불량 등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평소와 달리 과식·과음까지 이어지면서 증상은 더욱 심해진다. 명절이 끝나도 증상이 나아지지 않아 더러는 우울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잘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정신과 채정호(사진) 교수에게 남성을 괴롭히는 명절증후군에 대해 들어봤다.
 
-명절증후군의 특별한 증상이 있나.
“명절증후군은 증상이 일정하지가 않다.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두통·어지럼증·위장장애·소화불량 등과 같은 신체적 변화가 대표적이다. 이와 함께 무기력증·피로감·우울감·호흡곤란 등의 정신적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명절증후군이 간혹 심해져 장기화되면 우울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명절증후군을 일으키는 원인이 뭔가.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한국의 명절이 가족 간에 잠재됐던 ‘관계’의 문제를 한꺼번에 드러내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부부 사이의 작은 문제뿐 아니라 대가족이 짊어지고 있는 갈등이 적나라하게 노출된다. 특히 한국 중년 남성은 무의식 중에 아내·부모·형제·자식들 눈치를 많이 본다. 아내와 어머니가 다투기라도 하면 해결은 남자가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명절이 두려워진다. 두 번째는 ‘비교’다. 가족·친척끼리 모이면 남자들은 비교를 많이 당한다. ‘돈을 많이 못 벌어서 어쩌니’ ‘네 동생은 잘나가는데 너는…’처럼 비교하는 말을 들으면 남자는 감정적으로 힘들어진다. 여자가 사랑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면 남자는 힘의 영향을 많이 받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자기가 무너지는 상황을 견디기 힘들어 한다. 셋째는 신체적 변화다. 한국 명절은 너무 짧다. 짧은 연휴 동안 장기간 운전을 하거나 성묘를 하는 일이 신체적으로는 무리다. 몸이 지치면 자신도 모르게 감정적으로 약해진다.”

-남성이 여성보다 정서적으로 더 강하지 않나.
“남성이 여성보다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2~3배 정도 낮긴 하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힘들었을 때 말이나 몸으로 표현하는 여성들과는 달리, 남자는 표현을 못하다가 한번에 ‘빵’ 터지는 경우가 많다. 여자는 변화가 단계적으로 눈에 띄고, 작은 신호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한다. 하지만 남자는 ‘명절 때 있었던 작은 일인데 뭘’ 하면서 쌓아두다가 어느 순간 확 꺾어진다. 예컨대 명절 후 이혼을 결정할 때도 남녀 차이가 있다. 남자는 여자와 달리 명절 연휴가 끝난 뒤 갑자기 이혼하자고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문이다.”

-아내나 가족이 남편의 스트레스를 예측할 수 있나.
“남자들의 언어에 민감해야 한다. 자신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다른 형태로 돌려서 표현한다. 대표적인 것이 ‘심기증(心氣症)’이다. 연휴가 끝나고 ‘내 몸이 어디가 아픈 것 같은데’ ‘암 걸린 거 아냐’라면서 반복해서 말할 때가 있다. 아내 입장에서는 병원을 찾아도 뚜렷한 질병이 없어 ‘이 사람이 왜 꾀병을 부리나’ 하고 지나칠 수 있지만 주의해야 한다. 스트레스를 다른 형태로 표현하는 거다. 이때부터 남편의 스트레스를 눈치채는 게 중요하다.”

-대가족이 모였을 때 명절증후군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 상처를 주지 않는 게 중요하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사람 때문에 마음에 한번 상처가 생기면 상대방이 아무리 ‘미안하다’ ‘잘못했다’라는 말로 용서를 구해도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는다. 다리가 부러지고 난 뒤에 다리를 부러뜨린 사람이 용서를 구해도 부러진 다리가 다시 붙는 건 아니다. 마음의 상처도 사라지는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옅어지는 거다. 명절 연휴가 지나면 오랫동안 얼굴 볼 일이 없기 때문에 속으로 삭혀두는 경우가 많다. 명절 때는 특히 말을 조심하고 특히 남자 앞에서는 비교하는 말을 하지 않는 게 좋다.”

-생활습관으로 명절증후군을 예방할 수 있다던데.
“아무리 스트레스 상황에 노출돼도 신체가 건강하면 금세 우울증 같은 증상을 이겨낼 수 있다. 연휴 내내 밤에 늦게 자고, 과식·과음을 하면 금세 신체 리듬이 깨져 작은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쉽게 무기력해지고 울적해진다. 특히 칼로리가 높은 명절 음식을 많이 먹으면 기분이 더 울적해진다. 초콜릿이나 아이스크림 같은 음식을 조금만 먹었을 때는 기분이 좋아지다가 너무 많이 먹으면 기분이 나빠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증상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경우도 있나.
“명절 전후 2~3일이 명절증후군 증상이 가장 심하다. 일주일 이상 가는 사람도 있다. 보통 명절이 끝나면 없어져야 하지만 후유증이 2주 이상 장기화되면 적응장애·우울증·신체형장애 등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때는 병원을 찾아 전문의에게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 

장치선 기자 charity1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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