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애나비의 잇 백 ‘레이디 디오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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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4호 26면

해마다 수많은 디자이너가 수도 없이 많은 핸드백을 창조한다. 대부분은 반짝 유행으로 사라지고, 아주 극소수만이 세월을 초월해 사랑받는다.
선택받은 것들엔 공통점이 있다. ‘뮤즈’가 있다는 점이다. 그 자체로는 액세서리에 불과한 핸드백이 그녀의 손에 들려 완벽한 스타일로 거듭난다. 그 모습은 때로 잊을 수 없는 매혹적인 장면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깊숙이 남겨지기도 한다. 그녀가 디자이너의 창의력이 빚은 핸드백에 생생한 숨을 불어넣는 것이다. 이렇게 핸드백은 한낱 주머니가 아니라 영원한 아이콘으로 등극한다.

브랜드 시그너처 <8>Dior

그레이스 켈리가 만삭인 배를 가리기 위해 들었던 에르메스의 ‘켈리백’,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가 발랄하게 어깨에 멨던 구찌의 ‘재키백’이 그런 경우다.
그리고 크리스찬 디오르의 ‘레이디 디오르(Lady Dior)’가 있다. 탄생한 지 20년도 안 된 핸드백이 ‘클래식’의 반열에 오른 배경엔 역시 ‘뮤즈’가 있다. 한 시대를 매혹시킨 영국의 다이애나 왕세자비다.

1995년 9월 디오르는 이 핸드백을 처음 선보였다. 출시됐을 때 제품명은 ‘슈슈(chouchou)’였다. 연인이나 친구처럼 아끼는 사이에 부르는 애칭이다. ‘슈슈’ 라는 달콤한 이름은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만나 우아하고 여성스러운 ‘레이디 디오르’로 바뀌었다. 가방이 나온 직후 프랑스 파리의 그랑팔레에서는 폴 세잔의 회고전이 개막했다. 크리스찬 디오르가 속한 LVMH그룹이 후원한 이 전시는 전 세계 17개국에 흩어진 세잔의 작품을 모은, 59년 만의 대규모 행사였다.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의 부인과 함께 오프닝 행사에 참석했다. 이때 마담 시라크는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파리 방문을 기념해 선물을 하는데, 디오르의 핸드백 ‘슈슈’였다.

선물이 아주 마음에 들었는지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여러 공식 행사에 이 핸드백을 들고 나타났다. 심지어는 같은 핸드백을 색깔과 소재가 다른 다양한 버전으로 디오르에 주문하기도 했다.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핸드백을 팔에 끼고 아이를 안은 사진, 핸드백을 손에 쥐고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는 사진이 잇따라 전 세계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우아하고 품위 있는 왕세자비의 자태는 핸드백의 이미지도 고급스럽고 귀족적인 것으로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그레이스 켈리와 재클린 케네디가 그랬던 것처럼 ‘다이애나 효과’는 엄청났다. 스타에겐 없는 ‘로열 패밀리’의 기품은 수많은 추종자를 만들어냈다. 핸드백의 인기는 치솟았고 품귀현상을 빚기도 했다. 핸드백은 개명까지 했다. ‘레이디 다이애나 스펜서’에게 찬사를 바치는 뜻으로 핸드백은 ‘레이디 디오르’로 불리게 됐다.

가방 디자인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정사각형의 토트백은 ‘카나주(CANNAGE·마름모꼴이 변형된 체크)’ 무늬가 퀼팅된 양가죽으로 만들어졌다. 카나주는 나폴레옹 3세의 의자에서 영감을 받은 무늬다. 47년 ‘뉴 룩(New Look)’을 발표한 크리스찬 디오르의 역사적인 첫 패션쇼에서 VIP들을 이 의자에 앉힌 이후 카나주는 디오르만의 독특한 패턴이 됐다. 핸드백엔 브랜드 이름의 알파벳 ‘D’ ‘I’ ‘O’ ‘R’ 모양의 금속 참(장식용 액세서리)이 매달려 있다. 기본 형태를 유지하면서 핸드백은 변신해 왔다. 악어가죽, 타조가죽, 퍼 등 다양한 소재가 등장했고 어깨에도 멜수 있도록 긴 가방끈을 달아서 한층 경쾌하고 젊어지기도 했다. 이번 시즌엔 단색에서 벗어나 세 가지 컬러를 화려하게 사용했다.

지난해 초 국내에서 새삼 ‘레이디 디오르’가 포털 사이트에 오르내린 적이 있다. 당시 방영된 드라마 ‘마이 프린세스’의 주인공인 김태희가 빨간색 ‘레이디 디오르’를 들고 나온 것이다. 드라마 제목처럼 여성스러우면서 상큼발랄한 공주 이미지에 맞는 핸드백 선택이 바로 ‘레이디 디오르’였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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