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태에게 돈봉투는 … 현재 얘기하라면 모르는 얘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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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순방을 마치고 18일 귀국한 박희태 국회의장이 인천국제공항 귀빈실에서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 관련 기자회견을 마친 뒤 차량에 올라 타고 있다. [김도훈 기자]

박희태 국회의장은 18일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과 관련해 “현재 얘기하라고 한다면 ‘모르는 얘기’라는 말씀밖에 드릴 수 없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고승덕 의원에게 2008년 7월 전대 당시 돈봉투를 보냈다는 의혹을 재차 부인한 것이다.

 해외 순방을 마치고 이날 오전 6시 인천공항으로 입국한 박 의장은 “이 사건은 발생한 지 4년이 다 돼 가기 때문에 기억이 희미할 뿐만 아니라 당시 중요한 5개 선거를 몇 달 간격으로 치렀다”며 “지금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국민께 심려를 끼쳐 대단히 죄송하다. 사죄하는 마음으로 4월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며 “검찰 수사결과에 따라 소정의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의장직 사퇴 여부와 검찰 소환에 관한 취재진의 질문엔 일절 답하지 않았다.

 박 의장이 계속 ‘모르쇠’로 대응하자 검찰은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전대 당시 ‘박희태 캠프’에서 일했던 안병용(구속) 한나라당 서울 은평갑 당협위원장과 박 의장의 전 비서 고명진씨는 현재 윗선은 고사하고 자신들의 관여 의혹도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이 때문에 검찰은 캠프에서 재정 문제를 담당한 조정만 국회의장 정책수석 등의 소환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검찰의 칼끝이 윗선을 향하다 주춤하는 모양새다.

 반면 정치권의 ‘용퇴 압박’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한나라당에선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직접 나서서 박 의장을 압박했다. 박 위원장은 이날 당 회의에서 “검찰수사가 장기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조속히 실체가 규명되도록 관련자들은 수사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며 “여야 원내대표가 충분히 만나 조속히 현명하게 해결해 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권영세 사무총장은 “경륜에 걸맞은 결단을 조속히 해주길 바란다”며 사실상 사퇴를 요구했다.

 이날 민주통합당은 ‘국회의장 사퇴촉구 결의안’을 제출했다. 박 의장이 사회를 보는 본회의는 거부한다는 방침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19일 새해 첫 본회의는 박 의장 대신 정의화 부의장이 의사봉을 잡을 예정이다. 박 의장으로선 ‘망신살’인 셈이다. 한나라당 황우여 원내대표는 “일단 박 의장에게 시간을 줄 것”이라면서도 “국민 눈높이에 맞는 대응책이 나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나라당도 결의안 처리에 동조할 수 있다는 뉘앙스다. 실제 한나라당에선 설 연휴가 시작되기 전 박 의장을 사퇴시켜 국면을 전환하자는 기류가 강하다.

 그러나 박 의장이 사퇴 결심을 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의장직 사퇴 여부에 따라 검찰 수사의 강도가 달라질 수 있어서다. 검찰이 입법부 수장의 주거지나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전방위 계좌추적에 나서기는 정치적 부담이 뒤따른다. 검찰이 현직 국회의장을 소환 조사한 적도 없다. 검찰 내부에선 수사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하고 있다.

박진석·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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