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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열전] 로비 킨(Robbie Keane)

중앙일보

입력

지난 일요일 새벽에 있었던 2002 월드컵 유럽 지역 예선 2조 첫 경기에서 아일랜드는 강호 네덜란드를 맞아 어웨이 경기 무승부를 거두는 나름의 선전을 펼쳤다.

이날 경기에서 아일랜드는 후반 25분까지 2대0으로 앞서는 등 자신들이 지닌 가능성을 유감없이 선보였는데 이런 아일랜드 축구의 부상은 로비 킨을 필두로 한 재능 있는 선수들의 등장과 무관치 않은 부분이라 할 수 있다.

로비 킨은 1980년 7월 8일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1997년 연습생 신분으로 잉글랜드 1부 리그(Division 1) 울브스(Wolverhampton Wanderers)에 입단한 킨은 97/98 시즌 개막전부터 주전으로 나서게 되었다.

38경기 출장에 11득점. 그것은 비록 2부 격의 리그에서의 활약이었지만 17살 소년이 프로에서의 첫 시즌에 거두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의 과한 성적표였다.

결국 미성년의 나이에 성인 국가 대표로 뽑히는 영광을 얻게 된 그에게 더블린에서 열린 아르헨티나와의 그의 두 번째 A매치 경기는 단지 가능성 있는 신예로만 비춰졌던 그가 단숨에 향후 아일랜드 축구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대들보였음이 확인된 자리라고 할만 했다.

이후 두 달 뒤 킨은 아일랜드 청소년 대표팀을 유럽 최정상의 자리에 올려 놓으며 자신의 진가를 재확인시켰다.

사이프러스에서 열린 18세 이하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 결승에서 독일과 승부차기까지 가는 혈투 끝에 우승컵을 거머쥐게 된 것이다.

이는 두 달 전 16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의 유럽 선수권 우승에 이은 또 한번의 쾌거로 그 동안 변변한 우승 트로피 한번 손에 쥐지 못한 채 유럽 축구의 변방으로 인식되던 아일랜드 축구에 새로운 가능성을 심어준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를 발판으로 세계 무대에 아일랜드 축구의 도약을 알리려던 그들의 계획은 일단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듬해 펼쳐진 ’99 나이지리아 청소년 축구 대회. 홈팀 나이지리아에 승부차기로 무릎을 꿇으면서 또 다른 돌풍을 기대했던 아일랜드 국민들은 자국 기대주들의 16강 진출에 만족해야만 했다.

또한 이 대회서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킨은 무득점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고 말았다.

하지만 이런 일시적인 부진도 그의 무서운 성장세를 가로막을 수는 없었다.

98/99 시즌 전반기에만 무려 16골을 득점하며 맹활약한 그에게 프리미어 리거가 되는 예고된 행운이 찾아왔다. 그 해 8월 약 9백5십만 달러에 프리미어 리그 코벤트리 씨티(Coventry City)로 이적하면서 영국 내에서 가장 비싼 몸값의 틴에이저가 된 것이다.

청운의 꿈을 안고 뛰어든 프리미어 리그. 로비 킨은 99/00 시즌 24경기 12골의 득점으로 코벤트리의 공격을 주도하며 성공적인 첫 시즌을 보냈다.

그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이번엔 또 다른 더 큰 무대가 그 앞에 다가왔다. 울브스 시절부터 그에게 관심을 보이던 이탈리아 리그의 자이언트 인터 밀란(Internazionale)이 결국 약 2천만 달러의 이적료에 지난 8월 킨을 영입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최고의 슈퍼 스타들이 운집해 있는 세리에 A 최고 명문 클럽 가운데 하나인 인터 밀란에서 호나우도, 비에리, 사모라노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가슴 벅찬 기회가 스무살 청년에게 주어진 것이다.

날랜 스피드와,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휘젖는 부지런함을 주무기로 상대 수비를 흐트러뜨리는 재주를 가진 킨은 공격형 미드필더로든 스트라이커로든 사용 가능한 선수로 호나우도와 비에리의 시즌 초반 결장이 불가피한 인터 밀란의 공격 진영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되는 선수다.

나이에 걸맞지 않는 노련함, 결정력, 그리고 큰 경기에 유독 강한 면모를 보이는 아일랜드의 천재 공격수 로비 킨.

최근 99/00 시즌 챔피언스 리그 본선 진출에 실패한 소속팀 인터 밀란의 명예 회복과 21세기 아일랜드 축구의 새로운 중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그의 몸놀림이 분주해져야 할 시점이 바로 지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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