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눈여겨봐야 할 ‘더반 플랫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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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조홍식
서울대 법과대학 교수

지난달 11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휴양지 더반에서 앞으로 수십 년을 좌우할 국제적 합의가 이뤄졌다. 유엔기후변화협약 제17차 당사국 총회가 새로운 기후변화체제를 논의할 ‘더반 플랫폼’을 출범시킨 것이다. 이로써 2020년 이후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모든 당사국을 대상으로 한 기후변화체제를 설립하기 위한 논의의 토대가 마련됐다. 선진국과 개도국 모두 기후변화에 대처하지 않고는 인류의 생존과 미래를 보장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그 대응방안의 ‘큰 틀’에 동의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는 무역으로 먹고사는 한국으로서는 눈여겨봐야 할 사실이다. 이제까지의 ‘녹색경주(green race)’가 앞으로 더욱 치열하게 전개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의 녹색경쟁력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28개국 중 18위라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구체적으로는 녹색수요 24위, 녹색공급 15위, 정부역할 6위를 기록했다. 현 정부가 2008년부터 ‘저탄소 녹색성장’을 국정 기조로 내세운 것을 감안하면 분명 실망스러운 결과다.

 그러나 녹색성장은 긴 호흡으로 지속시켜 나가야 비로소 성과를 낼 수 있는 정책이다. 기업과 소비자의 이기심, 근시안적인 시각, 정보 부족 등은 시장이 자발적으로 녹색성장을 이뤄낼 것을 기대할 수 없게 한다. 정부의 지난 3년간의 노력 또한 가시적인 결과를 만들어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번 연구에서 1위를 차지한 네덜란드는 1970년대 1차 오일쇼크 이후 이미 녹색에너지원 개발에 착수하고 80년대 말 환경세의 기초를 마련하는 등 장구한 세월을 준비했다. 장기적 안목을 가진 정부의 ‘견인차’로서의 역할이 필요한 까닭이다.

 정부가 녹색공급 및 녹색소비를 촉진하려면 다음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 첫째, 정부는 적절한 규제와 지원으로 녹색성장의 토대를 마련할 뿐만 아니라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통해 녹색시장의 확대를 꾀해야 한다. 특히 재생에너지의 보급을 위한 과감한 지원, 전기요금의 현실화, 배출권거래제의 확립, 친환경세의 도입 등 정책의 최적 조합을 통해 시장에 확실한 ‘시그널’을 보내야 한다. 녹색시그널이 확실하지 않은 한 시장참여자들은 미래 투자에 나설 수 없다.

 둘째, 녹색성장을 위한 지속적인 추진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녹색성장은 기후변화에 응전하기 위해 마련된 국가전략이니만큼 특정 정권의 정치적 어젠다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70년대부터 에너지 위기에 대비한 서구 선진국들은 기후변화를 국정과제로 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근자에는 기후변화 전담 부처를 설치하고 있다. ‘매킨지보고서’도 녹색성장정책의 결정적 약점으로 30년 이상 추진할 수 있는 정부 시스템이 없음을 지적하고 있다.

 셋째, 녹색수요를 진작시키기 위해 수요자인 국민과의 적극적인 소통이 이루어져야 한다. 대화와 소통이 만드는 공감과 합의는 민간의 자발적 참여를 불러오고 국민의 자발적 실천은 정책이 성공할 가능성을 높인다.

 희망이 얇아지고 불안이 커질 때 사람들은 자신을 구원해줄 리더를 찾는다. 하지만 희망의 정치는 ‘누구’에 있지 않다. 우리가 하던 일을 돌아보고 그것이 필요한지 여부를 검토한 후 그것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해답은 여전히 ‘know-who’가 아니라 ‘know-how’에 있다.

조홍식 서울대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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