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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위크]힙합의 대부 워싱턴에 가다

중앙일보

입력

힙합 혁명의 대부격인 러셀 시몬스(42)
는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그는 도시풍 캐주얼 의상을 즐겨 입고, 늘씬한 여성과 랩이라는 자극적인 거리음악을 홍보해 벌어들이는 수백만 달러의 돈을 사랑했다. 그는 대중문화의 우상이자 뜨거운 정치적 이슈들이 가득한 도심에서 신세대 음악 사업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인물이 됐다.

그런데도 그는 최근의 몇 차례 선거에서는 투표조차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스타 랩 가수의 발굴자이자 데프 잼 레코즈社 공동 창립자인 그가 지난주 각료들 중에서도 고지식하기로 소문난 재닛 리노 법무장관과 지도자급 정치 운동가들이 만난 자리에 함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지난주 토요일 마틴 루터 킹 2세의 역사적 워싱턴 D.C. 행진 기념 37주년을 맞아 경찰의 잔혹성을 성토하러 워싱턴에 운집한 흑인 청년들을 타이르기 위해 무대에 오른 사람 역시 시몬스가 아니었던가.

힙합 세대가 투표할 수 있는 성인이 돼가는 지금 시몬스는 변혁의 선봉에 서고자 한다.

그는 힙합 문화의 탄생기부터 현장에 있었던 인물이다. 많은 이들은 시몬스가 힙합의 대중화에 누구보다 지도적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그 과정에서 돈도 많이 벌었다.

이제 그는 퍼블릭 에너미·비스티 보이즈·DMX 같은 수많은 랩 아티스트들을 스타로 만든 마케팅 감각과 지명도를 이용해 젊은 세대의 정치 참여를 유도하고 싶어한다.

비평가들은 시몬스와 민주당의 활발한 관계를 지적하며 그가 자신의 이미지를 스스로 저버리는 게 아닌가 염려한다.

비즈니스계나 정계와 항상 접촉해온 시몬스는 자신이 성장하고 있는 증거라고 치부한다. “나는 가능한 한 책임을 다하거나 적극적인 편이 아니었다”면서 “젊은이들의 정치 참여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하겠다”고 그는 최근 뉴스위크와 가진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런 변화는 늦은 감이 있지만 시몬스에겐 자연스런 과정인 것 같다.

뉴욕州 퀸스에서 교육자이자 사회 운동가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주택단지 건설현장에서 흑인과 백인 인부들의 분리를 반대하는 시위에 나선 부모를 따라다녔다.

형인 대니는 후에 블랙 팬서스와 웨더멘(1960년대의 투쟁적 혁명조직에 속한 과격파)
에 가입했지만 시몬스는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음반 사업가가 됐고 16년 전 릭 루빈과 함께 데프 잼 레코즈社를 설립했다. 후에 힙합적 주제로 영화를 제작해 할리우드에 랩 문화를 도입했으며 현재 유명한 도시풍 패션 브랜드로 자리잡은 팻 팜을 출범시켰다.

화려한 연예계 생활을 제외하곤 그는 힙합 외의 분야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시몬스는 뉴욕의 잘 나가는 나이트 클럽에서 근사한 여자들을 찾아다니는 취미로 유명했으며 칼럼니스트들은 그를 여러 슈퍼모델들과 결부시키곤 했다.

그러나 이제 시몬스는 유부남이자 초보 아빠이며 요가를 신봉하는 채식주의자로 최근에는 자신이 갖고 있던 데프 잼社의 마지막 지분을 처분했다.

그토록 화려한 라이프스타일을 선도하던 사람이 인종차별적 검문 수색을 한 경찰국에 징계를 내리도록 리노 장관을 설득하는 한편 젊은이들을 투표에 끌어들이려는 ‘랩의 열기를 투표에!’(Rap the Vote)
라는 캠페인을 공동 후원하며 급작스런 변신을 하고 있다.

민주당의 선거자금 모금원과 전략가들은 시몬스의 지지와 충고를 활용하고 있다.

그는 2주 전 자신의 360힙합.컴 웹사이트가 민주당 전국위원회와 공동 후원한 ‘신세대 유권자들에 대한 토론회’를 위해 민주당 전당대회에 참석했다. 또한 힐러리 클린턴의 뉴욕 상원의원 선거운동을 위해 1인당 1천 달러짜리 모금 파티를 개최, 5만 달러 이상을 모금했다.

힐러리 선거진영은 시몬스의 모금 능력뿐만 아니라 정치감각도 인정한다.

힐러리의 지지자들 중 기업 중역들은 돈만 내고 손을 떼는 경우가 대부분인 반면 시몬스는 거의 참모 같은 역할을 한다고 선거본부장 빌 드블라시오는 말했다. 적어도 그는 인기 있는 한 힙합 라디오쇼에 힐러리가 출연하도록 손을 쓴 적도 있다.

시몬스의 장점은 이질적인 세계를 넘나드는 능력이다.

그의 친구들 중에는 데이비드 게펜과 론 페럴먼 같은 억만장자도 있고, 소년 시절 친구인 전과자들도 있다. 그는 또 샤프턴 목사나 ‘동물의 윤리적 처우를 위한 모임’ 같은 조직과 탄탄한 연대관계를 맺었다.

또 ‘네이션 오브 이슬람’의 수장인 루이스 파라칸과 친하면서 유대계 사회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민주당과 고어-리버먼 티켓을 지지하는 시몬스의 행보는 과격파 진영으로부터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젊은 힙합 세대를 민주당으로 몰고가는 사람은 필요없다”고 네이션 오브 이슬람의 할렘 사원을 이끌던 前 지도자 콘래드 모하메드는 말했다. 그러나 모하메드도 무관심한 아이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면에서 시몬스의 정치 활동에 긍정적 측면이 있음을 인정했다.

시몬스의 고어 지지에는 모순적 측면이 많다.

고어의 부인 티퍼와 러닝메이트 조 리버먼은 과격한 가사의 음악에 대한 반대 캠페인을 주도했다. 그중에는 데프 잼社의 음반도 있었다. 시몬스는 그 이슈 하나 때문에 상대방보다 훨씬 낫다고 믿는 후보들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본바닥 정치를 힙합 음악처럼 ‘첨단 유행’으로 만드는 것은 그의 다채로운 경력에서 가장 어려운 작업일지도 모른다. (Johnnie L. Roberts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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