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시장서 고구마 하역하다 싸움난 사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지난 5일 오후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에서 고구마 상자를 실은 트럭의 하역을 두고 농민·상인들이 가락항운노조 조합원들과 몸싸움 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8일 오후 9시 서울 송파구 가락시장. 고구마 박스가 600~800개씩 실려 있는 5t 트럭 일곱 대를 둘러싸고 100명이 넘는 사람이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고구마를 싣고 온 농민과 이를 판매하는 중간도매상(중도매인)들, 하역을 담당하는 가락항운노조 조합원들 사이에 고성과 막말이 오갔다. 농민·중간도매상은 “고구마를 내려놓는 데 왜 이렇게 시간이 걸리느냐. 차라리 우리가 내리겠다”고 했고, 항운 노조원들은 “짐을 내리는 권한은 우리에게만 있다. 손을 떼라”고 맞섰다. 일부 노조원은 중간도매상의 멱살을 잡고 폭언을 했다.

 노조와 중간도매상의 충돌은 5일 오후 8시쯤 30여 명이 대치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경기도 여주·이천 등의 농민들이 가세하면서 사태가 커지고 있는 양상이다. 이 과정에서 농민 측 신고로 경찰이 노조원 2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갈등의 핵심은 고구마를 트럭에서 내릴 권한이 누구에게 있느냐는 것이다. 가락시장이 생긴 1985년 이후 27년 동안 시장에 운송된 농수산물의 하역과 점포 배송은 항운노조 소속 근로자들만 해 왔다. 가락항운노조 관계자는 “직업안정법 33조에 따라 노조만 근로자를 공급할 수 있다”며 “왜 이제 와서 문제를 제기하 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운송·판매는 농민과 중간도매상이 할 수 있지만 하역만큼은 노조의 몫이라는 말이다. 중간도매상은 10㎏ 상자당 186원의 하역비를 노조에 지급한다. 노조는 하역비를 모아 조합원에게 평균 250만원의 월급을 지급하고 있다.

 반면 중간도매상 측은 하역 주체를 명확하게 규정한 법률 조항이 없다고 주장한다. 고구마 중간도매상 김대수(55)씨는 “하역을 누가 할 수 있는지를 정해 놓은 법률이 어디 있느냐”며 “농수산물유통법 40조는 외부 업체 등도 하역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중간도매상은 “한 시간이면 될 물량을 두세 시간 걸려 내리는 등 항운노조의 일 처리 속도가 너무 느리다”며 “불만이 많았지만 노조가 무서워 그동안 쉬쉬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고구마가 특히 문제되고 있는 것은 농산물 중 비상장품목으로 분류되고 있어서다. 경매를 통해야 하는 딸기·감귤 등 상장품목과 달리 고구마·쪽파 등 비상장품목은 경매 없이 출하자가 바로 중간도매상에게 판매한다. 비상장품목은 하역을 빨리 할수록 이윤이 많이 남는 구조다.

 김대수씨는 “노조원 충원도 하지 않으면서 하역비를 10% 인상하려 한다”며 “이공신 노조위원장이 27년 동안 위원장을 맡으며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횡포를 부리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위원장은 “품목에 따른 차별 없이 들어오는 순서에 따라 작업하고 있다” 고 설명했다. 현재 노조와 중간도매상 측은 서울시농수산물공사의 중재로 관계 기관에 법령 질의를 요청해 놓은 상태다.

이정봉·위문희 기자

서울 가락항운노동조합은

-조합원 : 중앙청과 소채분회·과일분회 240명

동부팜청과분회 206명

- 근로시간 : 3조 2교대(통상 오후 6시 출근. 오전 9시 퇴근)

- 업무 : 농산물 경매장 하차작업과 중간도매상 점포까지 배송

-급여 : 평균 월 250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