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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의 에디톨로지 창·조·는 편·집·이·다] 사이버 시대 … 권력은 ‘윈도·터치’에서 나온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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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호 25면

권력도 지식이다. 대통령이 새로 선출되면 각 부처의 장을 새로 뽑는다. 그런데 단순히 부처의 장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아예 없던 부처가 생기고, 멀쩡하던 조직이 사라지기도 한다. 권력을 잡은 사람이 자신의 지식에 따라 권력을 재편하기 때문이다. 권력은 지식의 편집을 통해 구체적으로 그 실체를 드러낸다.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새로 생긴 대표적인 부처는 ‘국토해양부’다. 이전의 건설교통부가 확대 개편된 것이다. 반면 정보통신부는 해체돼 지식경제부로 흡수됐다. 현대건설 사장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의 과거 경력을 안다면 당연한 결과다.

⑩ 창문과 만지기

아이팟 1세대

기업도 지식이다. 기업의 각 세부 조직은 시장에 대응하는 기업 경영자의 지식이 반영된 결과다. 조직 개편은 지식의 재구조화, 즉 지식을 새롭게 편집하는 것이다. 문제는 각 기업이 지향하는 지식의 정체성을 명확히 해주는 개념이 있느냐는 거다. 상상력의 편집을 가능케 하는 개념의 존재 여부가 기업의 성패를 결정한다. 사이버 스페이스라는 새로운 세상을 연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의 핵심 개념을 비교해보자.

스티브 잡스 “위대한 예술가는 훔쳐온다”
지난번에 얘기한 대로, 스티브 잡스는 마우스를 이용한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를 통해 하이퍼텍스트 시대의 혁명을 열었다. 그 과실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모두 따 먹었다. ‘윈도스(windows)’다. 이전의 마이크로소프트 PC는 도스(DOS) 운영체제였다. 도스 운영체제는 복잡한 명령어를 일일이 문장으로 쳐 넣어야 했다. 그림으로 된 아이콘을 마우스로 누르게 돼 있는 애플 매킨토시가 훨씬 더 직관적이고 편리했다. 아름답기까지 했다.

사실 매킨토시의 운영체제는 스티브 잡스가 다른 곳에서 개발된 운영체제를 훔쳐온 거다. 매킨토시는 제록스 알토(Xerox Alto)컴퓨터를 흉내 냈을 따름이다. 제록스 알토는 제록스 연구소가 개발해 1973년 출시한 초기의 개인용 컴퓨터, 즉 PC의 원조다. 데스크톱 메타포와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이용한 최초의 컴퓨터라고 할 수 있다.

신윤복, 연당야유도

스티브 잡스는 제록스의 운영체제를 훔쳐온 자신의 행위를 ‘훌륭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쳐온다’는 피카소의 말을 앞세워 정당화하곤 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훔쳐온 그 모든 아이디어를 철저하게 관리했다. 스스로 훔쳐봤기에 지적재산권이라는 개념의 중요성을 더 확실하게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아이튠스’의 성공은 바로 이 경험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잡스식 지적재산 관리방식은 당시로는 너무 일렀다. 소프트웨어까지 일일이 구입해야 하는 그의 컴퓨터는 한마디로 너무 비쌌다.

비싼 가격으로 인해 애플의 시장 점유율이 주춤하는 사이, 마이크로소프트는 매킨토시의 운영체제를 다시 훔쳐온다. 이미 도스를 기반으로 한 PC컴퓨터를 저가로 보급해 사용자층을 넓혀 놓은 상태에서 ‘윈도스’라는 짝퉁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만들어 낸 것이다. 승부는 바로 갈렸다. 열받은 잡스가 빌 게이츠를 만나 흥분해 욕설을 퍼붓자, 게이츠는 이렇게 응수한다. “우리 둘 다 제록스라는 옆집의 부잣집에 훔치러 들어갔던 거다. 내가 훔치러 들어갔더니 네가 벌써 왔다 갔던 걸.”

제대로 작동하는 윈도스 3.0이 나온 것은 1990년 5월이었다. 그해 독일은 통일됐고, 이어 동구권 사회주의가 줄줄이 무너졌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윈도스의 등장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데올로기가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사건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스는 컴퓨터 운영체제의 절대적 위치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물론 예전만큼은 아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성공은 곧 윈도스의 성공이란 이야기다.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스는 ‘사이버 공간’이라는 새로운 세상을 들여다보고 내다보는 ‘창문’이라는 상상을 가능케 했다. 그래서 여전히 ‘윈도스’라는 이름을 유지하는 거다(물론 내 해석이다. 빌 게이츠가 실제로 무슨 생각으로 만들었는가와는 아무 상관없다). 우리는 창문을 통해 세상을 본다. 그런 의미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스’라는 개념은 기막힌 메타포다. 우리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스를 통해 이제까지 전혀 알 수 없었던 미지의 사이버 공간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거다. 아니 보고 있다고 믿게 된 거다. 뭐든 믿는 대로 된다. 게다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창문은 하나가 아니다. ‘윈도스’다. 여러 개란 이야기다.

복수의 창문에 관한 상상은 ‘멀티태스킹(multi-tasking)’을 가능케 한다. 사방의 벽에 붙어 있는 창문을 통해 세상을 다양하게 볼 수 있는 것처럼, 동시에 다양한 작업이 가능하다는 상상을 하게 된다는 뜻이다. 결국 윈도스에 관한 상상은 병렬 연산을 가능케 하는 CPU와 같은 하드웨어의 혁명적 발전으로 이어지게 된다(사실은 CPU의 속도를 엄청나게 빠르게 하여 병렬 연산인 것처럼 착각하게 하는 것이다). 개념이 먼저고 기술은 나중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스가 승승장구하는 동안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서 쫓겨나 이 회사, 저 회사를 전전하게 된다. 애플 매킨토시 운영체제의 이름은 지금도 여전히 그저 오퍼레이팅 시스템의 약자인 OS에 개발 번호를 붙이는 방식이다. 애플사는 최근 들어 맥의 운영체제에 ‘레오파드’니, ‘라이언’과 같은 고양잇과 이름을 붙이지만, 윈도스와 같은 상상의 메타포에는 질적으로 상대가 될 수 없다.

중년 사내들이 스마트폰 즐기는 까닭
사실 멀티태스킹이 제대로 구현되는 최초의 컴퓨터는 애플에서 쫓겨난 스티브 잡스가 88년 창업해 만든 넥스트(NeXT)컴퓨터다. 이름 그대로, 다음 시대를 준비하는 컴퓨터였다. 여러 가지 동영상, 음악을 동시에 재생할 수 있는 최초의 멀티미디어 컴퓨터였다. 그러나 PC시장의 기득권은 이미 마이크로소프트가 쥐고 있었다.

빌 게이츠에게 처절하게 당한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 복귀하면서 새로운 개념을 들고 나온다. ‘터치(touch)’다. 그러나 이미 마이크로소프트가 대세인 PC시장을 피해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MP3 플레이어 시장에 ‘아이팟’을 들고 나타난다. 그때까지 MP3 플레이어는 한국 제품이 대세였다. 특히 ‘아이리버’라는 토종 브랜드가 세계를 지배했다. 전 세계의 젊은이들은 한국산 MP3 플레이어를 목에 걸고 다녔다. 인천공항에도 엄청난 규모의 전시장이 있었고, 소니의 나라, 일본 신주쿠 한복판에도 한국의 아이리버 매장이 문을 열었다. 그러나 그건 단지 그때까지였다.

애플의 아이팟이 등장하자, 우리나라 아이리버는 한 방에 훅 갔다. 기술로 따지면 아이리버가 훨씬 더 뛰어났다. 그 작은 기계에 녹음 기능, 라디오 기능, 어학 학습 기능까지 다 있었다. 음질도 훨씬 더 좋았다. 아이팟은 단지 음악을 듣는 기능 한 가지뿐이다. 그런데 한 방에 훅 갔다.

사람들은 애플 디자인의 승리라고 이야기한다. 아니다. 그렇게 추상적으로 이야기하면 절대 그들을 따라잡을 수 없다. 구체적으로 경험되는 그 디자인의 내용이 뭐냐는 거다. 만지는 거다. 애플 아이팟의 성공은 만지는 데 있었다. 처음 나온 아이팟 1세대는 기계식 ‘스크롤 휠’을 달고 나왔다. 예쁘기는 했지만 그리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진 못했다. 2002년에 ‘터치 휠’을 달고 나온 아이팟 2세대부터 잡스 열풍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때까지의 모든 디지털 기계는 버튼을 눌러야만 했다. 우리는 디지털 세상을 손가락으로 눌러야만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사랑하는 이를 만지듯, 가볍게 문대기만 해도 반응하는 디지털 기기가 나온 것이다. 아이팟에 사람들은 환장하기 시작한다. ‘누르기’와 ‘만지기’는 질적으로 다른 경험이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절대 누르거나 찌르지 않는다. 만진다. 가끔 문대기도 한다!

군대를 다녀온 사내들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비유가 있다. 총의 방아쇠를 애인 가슴 만지듯 하라는 거다. 그때는 하나도 안 재미있었다. 그러나 총을 쏴야 하는 살벌한 맥락에 그런 어설픈 비유를 하는 이유는 그렇게 설명해야 ‘피부에 와 닿게’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피부에 와 닿아야 제대로 이해되는 것처럼, 스티브 잡스도 디지털 기기를 피부에 와 닿게 만들었다. 자판을 두드리거나, 버튼을 누르는 것은 지극히 공격적 행위다. 가끔 자판을 ‘개 패듯’ 때리는 사람들을 본다. 꼭 enter키나 space바를 칠 때 그런다. 그런데 살짝 만지기만 해도 반응하는 기기가 나온 것이다. 이건 혁명이다!

‘터치 휠’을 달고 나온 아이팟 2세대 이후 10년 동안, 애플은 수없이 많은 기기를 매년 새로 발표한다. 모델도 바뀌고, 기능도 바뀌었다. 그러나 최신 아이폰, 아이패드에 이르기까지 변치 않고 지속되는 기능이 있다. ‘터치’다. 물론 우리의 삼성이나 LG도 터치를 만든다. 그러나 손가락으로 눌러서 반응하는 ‘감압식 터치’와 살짝 문지르면 반응하는 애플의 ‘정전식 터치’는 근본적으로 다른 정서적 경험이다. 구태여 비유를 하자면 찔러야 반응이 오는 ‘40대 피부’와 살짝 닿기만 해도 반응이 오는 ‘20대 피부’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빌 게이츠의 ‘윈도스’ 개념에 형편없이 무너졌던 스티브 잡스는 ‘터치’라는 개념을 통해 디지털 시장을 오늘날까지 완벽하게 지배하게 된다.

만지고 만져지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다. 아무도 만져주는 사람 없고, 만질 사람도 없고, 또 잘못 만지면 한 방에 몰락하는 이 땅의 중년 사내들이 룸살롱에 가는 이유도 단순하다. 만지고 만져지기 위해서다. 그 근본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니 돈 내고 만지러 가는 거다. 그래서 요즘 중년 사내들이 시간만 나면 손바닥에 스마트폰을 올려놓고 그렇게들 만지고 있는 거다.

아이폰과 룸살롱의 공통점에 관해 이런 이야기를 어느 칼럼에 썼다가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어떤 페미니스트 변호사는 내가 성(性)산업을 정당화한다고 침을 튀겨가며 반론을 쓰기도 했다. 이런 젠장. 난 이런 종류의 정의감에 불타는 이들을 무서워한다. 너무 오버하기 때문이다. 난 문화 심리학자로서, 또한 ‘여러 가지 문제 연구소장’으로서 도대체 남자들이 왜 룸살롱에 가는가를 심리학적으로 설명하려 했을 뿐이다. 그걸 성산업을 정당화한다고, 날 포주처럼 취급하는 것은 정말 한심한 문자 해독 능력이다. 제발 내가 가리키는 달을 봐 줬으면 한다. 하여간 과잉 정의감처럼 무서운 것이 없다. 아무나 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하나 더 보태자. 중년 남자들이 룸살롱에서 하는 행태는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끊임없이 여자를 더듬는 유형, 여자와 로맨틱한 대화를 하는 유형, 옆의 여자를 소가 닭 보듯 하는 유형. 이 세 가지 유형은 아주 역사가 깊다. 신윤복의 그림(아래)에도 그대로 나온다. 내 생각에는 중앙SUNDAY의 김종혁 국장은 첫 번째 유형이어야 할 것 같다. 요즘 중앙SUNDAY를 확장하는 ‘미러클 선데이 프로젝트’한다고 엄청 고생하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누가 좀 만져주는 위로가 필요하다.



김정운 문화심리학 박사.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와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노는 만큼 성공한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등의 저서와 방송 활동, 특강을 통해 재미와 창조의 철학을 펼치고 있다. cwkim@m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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