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투자 12% 늘린다는 데 … 일자리는 2%만 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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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앞줄 왼쪽 다섯째)이 13일 서울 역삼동 르네상스호텔에서 열린 30대 그룹 간담회에서 각 그룹의 기획·총괄 담당 사장단과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투자와 일자리를 늘려 위기를 기회로’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에서 홍 장관은 대기업의 선제 투자와 고용 확대를 강조했다. [연합뉴스]

13일 오전 서울 역삼동 르네상스 호텔에 홍석우 지식경제부 장관과 삼성·현대차·SK·LG 등 30대 그룹 기획·총괄 담당 고위 임원이 모였다. 장관이 직접 대기업의 투자와 고용을 독려하기 위해 만든 자리다. 지경부가 이런 간담회를 마련한 건 4년 만의 일이다. 그만큼 정부는 다급하다.

 이날 지경부가 30대 그룹의 올해 투자계획을 취합해 보니 그 규모는 151조4000억원에 달했다. 지난해(134조8000억원)보다 12.3%나 많다. 대기업으로선 일단 ‘성의 표시’는 한 셈이다. 홍 장관도 “세계 경기가 불확실해 투자와 고용을 줄일까 걱정했는데 그래도 지난해보다 늘어난다니 다행”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이미 올 투자목표를 사상 최대 규모인 14조1000억원으로 확정했다. 지난해보다 15.6% 증가했다. SK그룹도 하이닉스 인수와 해외자원 개발 등 대형 신규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지난해보다 10조원 이상 늘어난 19조1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삼성은 다음주 공식적인 올해 투자계획을 밝힐 예정이지만 지난해(43조원) 수준을 뛰어넘을 것이란 예상이다. LG는 13일 16조4000억원 투자 계획을 확정했다.

 하지만 핵심인 일자리로 넘어가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30대 그룹이 올해 새로 뽑겠다고 한 인력은 12만3000명이다. 계획대로 되더라도 지난해 12만 명에서 2.2% 늘어나는 수준에 그친다.

 12.3%(투자 증가폭)와 2.2%(채용 증가폭)의 격차는 대기업의 투자와 일자리 간 ‘미스매치’를 상징한다. 지경부 김성칠 산업정책과장은 “대기업의 투자가 주로 대규모 시설에 집중되면서 실제 일자리 창출 효과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며 “올해 대기업의 투자와 채용 계획 간 격차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올 30대 그룹 투자목표액 151조4000억원 속에는 국내가 아닌 해외 투자액도 상당액 포함돼 있다. 김 과장은 “국내외 투자를 구분하지 않고 총액만 제출한 업체도 있어 정확히 집계되지는 않지만 대략 15%는 해외 투자분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최근 수조원이 들어가는 첨단 플래시 메모리 공장을 중국에 짓겠다는 계획을 정부에 제출해 승인을 받은 상태다. 해외 시장 공략을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국내 고용시장에는 악재다.

 ‘제조업, 수출, 대기업’의 고용 창출 능력은 갈수록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연세대 성태윤(경제학) 교수는 “과거 수출산업을 지원한 데는 거기서 만들어진 부가가치가 국내 전방위로 퍼져 나간다는 전제가 있었다”며 “하지만 최근에는 수출산업과 내수·서비스 등 다른 부문과의 양극화, 단절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돌파구는 ‘서비스, 내수, 중소·중견기업’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특히 이들 분야에서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김선빈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서비스 시장을 충분히 경쟁적으로 만들어 혁신과 자본 확충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며 “90년대 후반 벤처창업 모델처럼 다양한 유망 서비스 모델이 만들어질 수 있는 ‘서비스 벤처’ 모델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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