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국악 먼저 알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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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교양국악 과목을 신청한 학생들에게 강의에 앞서 몇 가지 조사를 실시한 적이 있다.

국악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을 물었다. 대부분 '서편제' '판소리' '사물놀이'로 대답했고 간혹 "만나면 좋은 친구~"로 시작되는 모 방송국 로고가 생각난다고 답한 학생도 있었다.

사물놀이·판소리 등 인기있는 장르들이 국악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판소리·사물놀이가 국악의 전부라고 알고 있는 것 같아 아쉽고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쪽만 부각되다 보니 궁중음악·풍류·향토민요 등 다른 음악들이 그늘에 가려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 민속악 중에서 사물놀이·판소리 외에도 얼마든지 많은 음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국악에는 1천년 혹은 5백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수제천'(壽齊天)이나 '여민락'(與民樂)에서부터 산사의 범종소리를 닮은 가곡 등 다양한 음악이 공존한다.

'문묘제례악' '보허자' '낙양춘'은 중국에서 유래했으나 이미 한국화된 음악이며, 여민락·수제천·영산회상·가곡·민요·잡가·산조 등 대부분이 이 땅에서 만들어진 우리 음악이다.

요즘 국악인 중에는 수제천·여민락을 중국식이라 하여 연주를 기피하는 일까지 있다고 한다.

세종조에 고려시대 음악을 근간으로 해 창작된 '여민락'을 중국음악이라고 말한다면 세종대왕이 통탄할 일이다.

라디오·TV·음반 등의 대중매체를 통해 전통음악은 이전보다 훨씬 대중과 가까워졌다. 전통적 형태를 간직한 음악이 소개되기도 하지만, 기존 전통음악을 대중적 스타일로 바꿔 연주하거나 기타·건반악기 등 서양악기와 함께 어우러지는 크로스오버 등 다양한 형태의 연주가 시도되고 있다.

이러한 경향 때문에 국악에서 점차 전통적인 것이 퇴조하고 정체성을 상실한 음악들이 생겨나고 있다.

국악의 범주는 끊임없이 확장되고 있다. 어떤 형태의 음악까지 국악으로 보아야 할 것인지도 모호하다.

국악기로 연주하는 서양음악이나 서양악기로 연주하는 창작국악을 두고 국악인지 아닌지를 애써 규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전통적인 것보다 크로스오버 스타일이 대중에게 쉽게 어필한다는 이유로 그것에 국악의 대표성을 부여하는 게 문제다.

전통성이란 현재와 호흡할 때 생명력을 갖지만, 진정한 대중화도 전통성을 담보해야 한다.

국악의 진수를 맛보기 위해서라도 균형감각을 잃지 않아야 한다. 수제천의 느낌이 다르고 시나위 합주의 느낌이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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