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BBC 메인뉴스 시간 논란

중앙일보

입력

공영방송의 세계적 모범사례로 꼽히는 영국 BBC방송이 메인뉴스의 방영시간을 놓고 논란에 말렸다. 그렉 다이크 BBC 사장은 최근 "BBC의 밤 9시뉴스 시간대를 내년부터 밤 10시로 옮길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한국도 마찬가지이지만 밤 9시 뉴스는 한 방송사의 이미지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간판 프로그램이다. 그럼에도 BBC가 공영방송의 자존심을 접고 뉴스 시간대를 옮기려는 것은 상업방송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하는 급박한 사정 때문이다.

황금시간대인 밤 9시대에 딱딱한 뉴스를 내보내는 대신 스포츠·드라마·오락 프로 등을 편성함으로써 더 많은 시청자를 잡아두겠다는 포석인 것이다.

하지만 일부 영국 의원들과 언론들은 BBC의 이같은 방침을 비판하고 나섰다. 세계 각지의 정보를 정확하게 보도하는 것으로 정평이 난 BBC 메인뉴스의 시간대 이동은 방송의 언론적 기능을 외면한 판단이라고 꼬집고 있다.

이에 대해 BBC 관계자들은 "뉴스가 한 시간 늦어진다고 해서 중요한 쟁점들을 빠뜨리는 것은 아니다"며 반박했다. BBC가 뉴스 시간을 변경하려면 BBC 이사회와 영국 문화부 장관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BBC의 이번 방침은 영국의 상업·지역방송 연합체인 ITV가 뉴스 시청자가 적다는 이유로 밤 10시 뉴스를 폐지한 뒤에 나온 것이어서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영국 방송위원회(ITC)는 ITV에 밤 10시 뉴스를 복원하라는 명령을 내렸지만 ITV가 거부해 현재 이 안건은 재판에 계류 중이다.

전문가들은 BBC의 뉴스시간 변경 방침을 방송환경 변화라는 큰 틀에서 바라보고 있다. 위성·디지털방송 등 다채널·다매체를 특징으로 하는 방송의 대변혁기를 헤쳐나가려는 BBC의 대응책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다이크 사장은 지난해 취임하면서 "디지털 혁명이 다가왔다"고 말하면서 온라인 서비스의 강화, 상업 케이블 방송과의 연합 등을 꾸준히 추진해왔다. 이번에도 디지털 방송 채널을 두 개 더 신설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BBC의 이같은 변신 움직임은 다음달 지상파의 디지털 시험방송, 내년의 위성방송 실시 등 변혁기에 놓여있는 한국 방송계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KBS가 밤 9시 뉴스를 밤 10시로 옮긴다면 시청자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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