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이헌재 위기를 쏘다 (14) 이학수의 창 vs 김태구의 방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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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2월 7일 발표된 삼성차·대우전자 빅딜. 부실이 심한 자동차를 털어내려는 삼성과, 부실을 떠안는 대신 현금을 받겠다는 대우의 셈이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구체적 협상에 들어가자 두 그룹은 입장 차를 좁히지 못했다. 같은 달 19일 열린 정부와의 3자 회동에서 김태구 대우 구조조정본부장, 최홍건 산업자원부 차관, 이학수 삼성 구조조정본부장(왼쪽부터)이 손을 잡고 있다. [중앙포토]

이학수가 창이라면 김태구는 방패다.

 “우리 쪽은 현금이 오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우리가 대우전자를 받고, 대우가 삼성자동차를 받으면 계산이 얼추 비슷하다고 봅니다.”(이학수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장)

 “말이 안 됩니다. 삼성차 부실을 어떻게 그냥 떠안습니까. 최소 3조5000억원은 얹어 받아야 합니다.”(김태구 대우그룹 구조조정본부장)

 1999년 1월 31일 청와대 서별관 회의실. 강봉균 청와대 경제수석과 나는 서로 쳐다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벌써 2개월째 되풀이되는 가격 싸움. 조금 진전이 있나 싶으면 다시 원점이다. 삼성차와 대우전자의 빅딜. 부실 많은 계열사를 서로 경쟁력 있는 그룹에 넘기자는 의도는 좋았다. 구조조정의 가시적 성과를 기다리던 청와대도 기뻐했다. 그런데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다. 늪에 빠진 것 같다.

 이 딜을 중매선 건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다. 98년 11월 말. 총리실 주재 장관회의에서 나를 불렀다. “삼성이 빅딜에 참여할 용의가 있다는구먼. 자동차를 넘기고 싶은 모양이오. 그냥 알고 계시오.” 일절 구조조정 얘기를 입에 올리지 않던 JP였다. 박기석 당시 삼성건설 고문의 부탁으로 말을 전한다 했다. 박 고문은 군(軍) 출신으로 김 총리와 친분이 있다고 했다.

 이학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실입니다. 생각이 있습니다.” 그는 바로 이건희 회장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며칠 뒤 늦은 오후 승지원. 이학수의 안내로 이건희 회장 집무실에 들어섰다. 이 회장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 곧 이규성 재정경제부 장관이 도착했다.

 “빅딜에 들어올 용의가 있으시다고요.”

 “네, 그렇게 처리하고 싶습니다.”

 “좋습니다. 정부도 잘 돕겠습니다.”

 10분간의 짧은 만남. 의사만 확인하면 충분했다. 다시 며칠 뒤 김우중 회장까지 포함한 4자회의가 대우 힐튼호텔에서 열렸다. 삼성차의 빚은 대우가 가져가고, 대우전자는 삼성이 사들인다. 4자 모두 이런 방안에 합의했다.

 DJ는 서둘렀다. 한시라도 빨리 성과를 과시하고 싶어했다. 98년 12월 7일 오전 5대 그룹 총수가 참석하는 정·재계 간담회에서 이 빅딜을 발표했다. 실무진은 전날 밤샘 회의 끝에 간담회 당일 오후에야 합의문에 서명했다. 합의도 안 된 채 발표가 먼저 나온 것이다.

 다시 청와대 서별관 회의실. 강봉균 수석이 나섰다.

 “이렇게 합시다. 도저히 가격 조정이 안 되니 일단 인수부터 하는 겁니다. 그리고 인수 가격은 사후에 정산하는 게 어떻습니까.”

 그는 속이 타는 것이다. 12월 삼성차 빅딜이 발표되자 부산 민심은 쑥대밭이 됐다. 삼성차 직원들은 “고용을 보장하라”며 시위를 벌였다. 부품 업체들의 반발로 공장도 멈췄다. “호남 정권이 부산을 죽인다”는 흉흉한 루머가 돌았다. 부담을 느낀 DJ도 “빨리 삼성차 조업을 재개시키라”고 강 수석을 재촉했다. 열흘 전인 1월 21일 두 그룹 총수가 승지원에서 또 만나 “빅딜을 조속히 매듭짓자”고 재합의까지 했다. 그런데도 실무 협상은 계속 제자리를 맴도니 강 수석으로선 답답할 노릇이었다.

 “알겠습니다.”

 이학수는 강봉균 수석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김태구는 버텼다. 자정이 넘도록 “그럴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김태구는 초조한 표정으로 수시로 회의장을 들락거렸다. 김우중 회장과 합의 조건을 상의하는 것 같았다. “아니 맨데이트(mandate·위임)도 안 받고 왔단 말인가. 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은 대체 뭐하는 자리요?” 김태구가 나갔을 때 강 수석은 내게 역정을 냈다.

 대우는 결국 사흘 뒤에야 ‘선인수 후정산’ 안을 받아들였다. 2월 3일 두 그룹은 신라호텔에서 양해각서(MOU)를 교환했다. “삼성·대우 빅딜 타결”. 언론사들은 대문짝만 하게 기사를 실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었다. 협상은 그 뒤로도 4개월을 더 끌었다. 진행될수록 미로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이 협상은 되지 않겠구나.’ 초장에 나는 감이 왔다. 기업 가치라는 건 시장에서도 매기기 힘든 것이다. 다급한 두 회사가 동상이몽(同床異夢)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야 말할 것도 없다.

등장인물

▶이학수(66)

‘삼성의 2인자’로 불린 핵심 임원. 1971년 제일모직에 입사한 뒤 82년부터 회장 비서실에서 근무했다. 98년부터 8년간 삼성 기업구조조정본부장으로 일하며 위기 극복의 중책을 맡았다. 2004년 삼성전자 부회장에 임명됐고, 2008년 이후 후선으로 물러났다.

▶김태구(71)

1995년부터 외환위기가 발생한 97년 12월까지 대우자동차 회장을 지낸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의 측근. 97년 대우차의 폴란드 공장 인수를 주도하는 등 대우 세계경영의 주역이다. 98년 대우 워크아웃 이후 그룹 정상화를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했지만 역부족, 나중에 형사 책임까지 지는 불운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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