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의 금요일 새벽 4시] “서른 넘었는데, 난 왜 최고의 순간이 …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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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병우 사진작가를 만났습니다. 예술가에게 작품이 얼마나 팔리는지, 가격은 얼마인지 물어보는 게 실례인 줄 알면서도 어쩌겠습니까. 궁금하니 물어야죠. 의외로 그는 솔직한 답을 해줬습니다. 게다가 찍어둔 작품은 ‘재고’, 전시는 ‘영업’, 새로 찍는 대상은 ‘신상 메뉴’라고 비유하는 여유까지 보여줬고요. 그 말을 들으면서 단순무식한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더 많이 찍으면 더 많이 팔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계산인 거죠. 한데 예술의 길은 멀고도 험한지라 작가가 지금껏 만족 100%로 ‘이때다’ 싶은 순간은 지금껏 서너 번뿐이었다네요. ‘10년에 한 번꼴’이라는 계산이면 ‘타율’이 생각보다 영 별로더군요. 하지만 작가는 껄껄 웃습니다. “그나마 그 기회를 잡으려면 늘 준비하고 있어야 해요.” 그 말에 감동을 받고 돌아와 선배들에게 그 얘기부터 꺼냅니다. 그런데 순간, 한탄이 나옵니다. “10년에 한 번이라…. 선배 난 이미 서른도 넘었는데, 난 왜 한 번도 최고의 순간이 없었을까요.” <이도은>

◆인터뷰를 마치고 정진석 추기경께 부탁했습니다. “윙크 한번 해 주세요.” 서울 세종로 네온사인마저 켜지 못한 팍팍했던 지난해를 보내고 새롭게 맞는 2012년에는 j 독자, 온 국민 모두 모두 힘내시라고요. 그런데 추기경님 빙긋이 웃으십니다. 그 모습도 놓칠세라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서도 저의 주문은 끈질기게 이어집니다. “추기경님, 이렇게, 이렇게요.” 카메라를 내려놓고 시범까지 보이지만 더 크게 웃기만 하십니다. 뒤에서 지켜보던 사람들 모두 같이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제 속 타는 줄도 모르고요. “추기경님, 오른쪽 눈 질끈 감으시고, 왼쪽 눈은 더 크게 뜨세요.” 백성호 기자까지 거듭니다. 그제야 추기경님이 고백하십니다. “한 번도 안 해봐서…, 자꾸 두 눈이 다 감길 것 같아서….” 주위는 다시 웃음바다가 됐습니다. 펑! 펑!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 아래서 추기경께서 한쪽 눈 찡긋! 윙크를 하셨습니다(사진). 새해 우리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하자고요. <박종근>

◆이곤 한국서학회 명예회장은 인터뷰가 끝날 무렵 서랍장 하나를 열었습니다. 켜켜이 쌓인 자료들과 서적들 사이에서 오래된 공책 하나가 나왔습니다. 1950년 공군사관학교 재학 시절 받은 공책이었죠. 회장님은 자랑스럽게 노트를 펼쳐 보여줬습니다. 정성스럽게 쓴 한시(漢詩)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버지에게서 배워 외고 있던 것을 잊어버릴까 봐 써 두셨다네요. “우와, 대단하시네요!” 그런데… 뜻은커녕 읽기조차 힘들었습니다. ‘우와!’만 반복하고 있는 제 사정(?)을 눈치채셨는지 회장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교관들도 무슨 소리인지 몰랐어요. 낙서했다고 혼이 났었거든요.” 마침 사모님께서 수고했다며 직접 담근 술을 내오셨습니다. 감사한 마음에 한자를 섞어 한 말씀 드렸죠. “사모님, 이런 걸 석양주(夕陽酒)라고 하죠.” 박 선배가 민망한 표정으로 얼른 바로잡습니다. “아이고, 이런 게 좋은 가양주(家釀酒)죠. 얘가 평소 회사에서 쓰던 말을 하고 그러네.” <이소아>

j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사람신문 ‘제이’ 80호
팀장 : 이은주 취재 : 백성호 · 이도은·이소아 기자 사진 : 박종근 차장 편집?디자인 : 이세영·김호준 기자 , 최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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