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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보수 삭제’ 유보 … 경제 기조는 좌회전 깜빡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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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5일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정책쇄신분과회의에서 김종인 비대위원(왼쪽)과 이주영 정책위 의장 뒤로 이준석 위원이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한나라당이 총선·대선을 앞두고 좌회전을 하고 있다. 한나라당에서 보수정당이라는 라벨을 아예 떼버리자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의 주장은 당내의 거센 반발로 일단 비대위 내에서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경제나 대북정책 기조의 대전환을 예고하는 정강·정책 개정안이 마련됐다. 보수우파에 치우쳐 중도층이나 중도좌파를 놓치면 선거에서 승산이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비대위 산하 정책쇄신분과위(위원장 김종인)는 5일 회의를 열어 당 정강·정책에서 ‘보수’라는 표현을 삭제하는 안에 대해선 추후 논의를 더 하기로 했다. 하지만 외부 인사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는 분과위에선 보수를 삭제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기울었다고 한다. 분과위 자문위원인 권영진 의원은 브리핑에서 “더 큰 정당으로 가기 위해서는 보수라는 표현에 집착하지 않는 게 좋다는 것이 다수의 의견이었고, 그 분포가 7대 3 정도였다”고 소개했다.

 이날 김종인 비대위원은 분과위 회의 직후 열린 비대위 전체회의에서도 “한나라당이 국민을 아우르는 정당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며 “세계 어느 나라의 선진정당을 봐도 이념을 꽉 담은 곳은 좌파정당 이외에는 없다”고 거듭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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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한나라당의 정체성 문제를 건드리다 보니 당 안팎의 반발이 엄청났다. 의원들은 트위터에 날 선 글을 잇따라 올렸다. 전여옥 의원은 “김종인 비대위원, 아예 한나라당 철거반장으로 왔다고 이야기하시지”라고 쏘아붙였다. 김 위원 퇴진을 요구해온 장제원 의원은 “급기야 중도보수 가치마저 표(票)에 판다니…이제 민주당원인가 민노당원인가”라고 꼬집었다. 정두언 의원은 “정강에서 보수를 뺀다? 이젠 당당하게 제대로 된 보수주의를 세울 때임”이라는 트윗을 날렸다. 진수희 의원은 “김종인 비대위원은 ‘외국 어느 정당도 강령에 보수라고 적은 나라가 없다’고 했는데 영국은 당 이름이 보수당”이라고 지적했다.

 중진 의원의 반발도 심했다. 홍준표 전 대표는 “부패한 보수·탐욕적 보수가 문제지, 참보수가 왜 문제냐”며 “이러면 보수도, 진보도 아니게 된다”고 비판했다. 비대위 주도의 급격한 ‘좌회전 코너링’에 한나라당 전체가 파열음을 내고 있는 모습이다. 보수 삭제안이 결정되려면 비대위 전체회의와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전국위원회를 거쳐야 한다.

 보수 삭제 논란은 결론을 내리지 못했지만 다른 분야의 정강·정책 개정 문제는 비대위 분과위원들 간에 공감대가 이뤄졌다. 그동안의 정강·정책은 ‘큰 시장, 작은 정부’, ‘기업 하기 좋은 나라’ 등 신자유주의적인 성향이 강했다.

 이에 비해 새 정강·정책에는 신자유주의가 낳은 폐해인 양극화 해소를 위한 가치들이 대거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분과위는 이날 ‘국민의 정치참여’, ‘소통’, ‘가족의 안전과 행복’ 등의 가치를 담고 양극화 해소를 위해 ‘공정경쟁’, ‘경제정의’의 가치를 정강·정책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자유시장경제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와는 상당히 거리를 둔 개념들이다.

 ‘상생발전’이란 표현도 정강·정책에 포함될 전망이다. 대·중소기업 상생 발전과 법인세 최고구간 신설 등 대기업에 대한 규제 강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비대위는 복지정책도 ‘선별적 복지 또는 보편적 복지’의 틀에서 벗어나 ‘평생 맞춤 복지’란 개념을 새 정강·정책에 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대북정책에서도 눈에 띄는 입장 변화가 보인다. 분과위가 정강·정책에 ‘유연한 대북정책 기조’를 반영키로 했기 때문이다. 현재 정강·정책에는 ‘호혜적 상호공존 원칙에 입각한 유연하고 적극적인 통일정책’이라고 명시돼 있지만 새로운 정강·정책에선 엄격한 전제들이 빠지거나 아예 새로운 개념의 문구들이 삽입될 전망이다.  

정강·정책 개정 진통 속 방향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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