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덕일의 古今通義 고금통의

여의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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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장자(莊子)』 ‘열어구(列禦寇)’에는 용과 관련된 일화가 여럿 나온다. 주평만(朱漫)은 지리익(支離益)에게 용 잡는 기술을 배우느라 천금(千金)짜리 집을 바쳤다. 3년 동안 배웠지만 그 기술을 쓸 곳이 없었다. 그런데 황하(黃河)가에서 돗자리 짜는 가난한 집 아들이 잠수해서 천금(千金)짜리 진주를 구했다. 이것이 뜻대로 다 된다는 여의주(如意珠)인데 정작 그 부친은 ‘돌로 깨뜨리라’고 말했다. 천금 진주는 깊은 못 속 흑룡(驪龍)의 턱(?) 아래 있는 것인데 용이 잠자고 있었기 때문에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용이 잠자지 않았다면 잡아 먹혔을 것이란 경고다.

 이런 용을 잡을 수 있는 존재가 상제(上帝)다. 『묵자(墨子)』 ‘귀의(貴義)’ 편에는 묵자가 북쪽 제(齊)나라로 가다가 일자(日者 : 점치는 사람)를 만난 이야기가 전한다. 일자가 “상제께서 오늘 북방에서 흑룡을 죽이시는데, 선생은 얼굴색이 검으니 북쪽으로 가시면 안 됩니다”라고 말렸다. 묵자는 무시하고 북쪽 치수(淄水)까지 갔다가 되돌아오고 말았다. 그러자 일자가 “내가 선생은 북쪽으로 못 간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라고 말했다는 일화다. 묵자는 “그대의 말은 쓸데없다”고 일축했지만 묵자도 상제가 날짜와 방위에 따라 갑을(甲乙)일에는 동쪽에서 청룡(靑龍)을 죽이고… 무기(戊己)일에는 중앙에서 황룡(黃龍)을 죽인다는 이야기 등은 잘 알고 있었다.

  흑룡은 대학자와 관련이 깊다. 『논어위찬고(論語緯撰考)』는 “숙량흘(叔梁紇)이 안징재(顔徵在)와 니구산(尼丘山)에서 기도하다가 흑룡의 정기에 감응해 공자(仲尼)를 낳았다”고 전한다. 『율곡연보(栗谷年譜)』는 신사임당이 흑룡이 침실로 날아드는 꿈을 꾸고 이이(李珥)를 낳아서 어릴 때 자(字)를 현룡(見龍)이라고 했다고 전한다. 잠곡(潛谷) 김육(金堉)과 함께 대동법(大同法) 확대 시행을 적극 주청했던 포저(浦渚) 조익(趙翼)도 흑룡이 현몽(現夢)하고 태어났다고 묘지명은 전한다. 청장관 이덕무의 시구에 “깊은 못의 흑룡이 여의주를 감추고 있네(珠藏下養潛驪)”라는 구절이 있다. 흑룡이 덕을 기르면서 때를 기다린다는 뜻이다.

 흑룡의 해에 벌어지는 선거에 누가 여의주를 품게 될지 의견이 분분하다. 잠룡(潛龍)은 많아 보이지만 정작 여의주를 쓸 줄은 아는지. 최소한 여의주를 도둑맞고 또 후회하는 잠자는 국민은 되지 말아야겠다.

이덕일 역사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