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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축구]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 축구의 원동력

중앙일보

입력

98 프랑스 월드컵. 그 어느때보다도 한국 전역을 축구 열풍으로 몰아넣었고, 전 국민들의 폭발적인 기대를 받았던 대회였다. 그러나 그 국민들의 기대를 침묵으로 바꿔버린 경기가 있다. 바로 한국팀 축구사에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비참한 경기, 네덜란드에게 5:0으로 당한 패배가 그것이다.

네덜란드는 막강한 공격력을 갖춘 팀으로 정평이 나있다. 베르캄프, 클라이베르트, 오베르마스등 팀의 공격을 이끄는주축 선수들은 이미 축구계에서 손꼽히는 스타 선수들이며, 70년대부터 지금까지도 전술적인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른 바 '전원 공격, 전원 수비'의 토탈사커라는 개념 역시 따지고 보면 공격 축구를 지향하는 시스템이다.

이처럼 네덜란드가 뛰어난 공격력을 바탕으로 세계 축구계에서 강호로 군림해 온 이유는 무엇일까? 네덜란드 대표선수들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는 아약스 암스테르담을 살펴보면서 네덜란드 축구의 원동력에 대한 의문점을 풀어보도록 하자.

아약스 암스테르담은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명문팀이다. 특히 90년대 초중반에 아약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으로 불리우는 루이스 반 할(Luis Van Gaal, 현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 전 아약스 & 바르셀로나 감독)체제 아래, 베르캄프와 데부르 형제, 셰도르프, 클라이베르트, 카누, 다비드스등 세계적인 스타들을 주축으로 유럽을 재패하며 전성기를 맞이한 클럽이다.

이 팀의 특징은 세계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만큼, 흑자를 내는 구단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과학적인 유소년 육성 프로그램으로 뛰어난 인재들을 양성하고, 그 선수들로 좋은 성적을 냄으로써 이탈리아, 스페인과 같이 더욱 큰 시장에서 이들을 주목시킨 다음에 비싼값에 팔아넘기는, 이상적인 시스템과 마케팅을 유지하고 있다. 더욱 놀라운것은 약속이라도 한듯이 때가 되면 아약스에서 스타 선수들이 나타난다는 점과, 그들이 유망주로 손꼽은 팀의 선수들은 꼭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한다는 점이다.

도대체 아약스는 어떠한 방법으로 이러한 인재들을 육성해내는것일까?

아약스가 가장 먼저 유소년 선수들에게 가르치는 4가지의 필수 항목이 있다. 이것을 줄여서 'TIPS'라고 부르는데, T는 Technique(기술), I는 Insight(통찰력), P는 Personality(성격,개성), S는 Speed(속력)을 나타낸다. 이것을 보고 의문점을 제시하는 분들도 없지 않아 있을것이다. 왜 4가지 항목에 체력과 힘, 정신력등이 제외되고 통찰력, 성격등이 들어가는 것일까라는 질문이 바로 그것인데, 아마도 여기서부터 네덜란드 축구와 한국 축구의 차이가 나타나는 듯 하다.

아약스의 축구 지도자들은 상당히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선수들을 육성한다.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것은 플레이의 창의성과 프로 선수들로써의 상품가치인데, 축구선수로써 '전술'이라는 부분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체적인 경기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통찰력을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그리고 프로 선수로써 커다란 무대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Personality라는 부분 역시 필수 불가결의 요소로 여기고 있을 정도이다.

그러나 그들이 무엇보다도 강조하는것은 축구에 대한 사랑과, 축구를 즐길줄 아는 자세라고 한다. 네덜란드인들은 그 누구보다도 축구를 사랑하는 민족이라고 자부하고 있으며, 그들만큼 축구를 즐길줄 아는 사람도 없다고 생각한다. 얼마전에 한국을 방문했던 네덜란드 축구 지도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테니스공으로 트래핑을 하며 시종 웃는 얼굴을 하던 그의 모습은 정말로 '축구'라는 스포츠를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네덜란드는 선수를 과학적으로 관리하는것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아약스에서 개발한 '사커 에어로빅'은 그야말로 하나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것이다. 사커 에어로빅은 선수들이 플레이를 하면서 가장 많이 하게 되는 세부 동작들을 엮어서 에어로빅화 시킨것인데, 아약스 출신의 선수들은 이 사커 에어로빅을 통해 여러가지 동작들을 자연스럽게 몸에 익혔다고 한다.

사커 에어로빅 이외에도 선수들의 개인 훈련 모습을 보면 너무나도 과학적이고, 지능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간단히 오베르마스라는 선수를 예로 들어보자. 오베르마스의 플레이를 보면, 그는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넘어졌다가도 곧바로 일어나서 또다시 최고 스피드로 질주하는 모습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얼핏 보면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넘어졌다가 곧바로 전속력으로 달리는것은 매우 힘든것이다. 오베르마스는 과연 선천적으로 이러한 능력을 타고난것일까? 그것이 아니다. 이러한 능력 또한 아약스 시절에 개인적으로 연습하면서 만들어낸 하나의 결과인것이다.

필자는 NHK에서 방송해 준 '아약스 축구클럽 탐방기'를 보고 그야말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정말 축구라는 스포츠를 선수들이 저렇게 웃고 즐기면서 할 수 있다는것과 그들의 과학적인 단면들이 한국의 그것과는 너무나도 달라서였을지
도 모른다. 한국 선수들이 쉴새없이 운동장을 달리고, 계단을 오르락거리며 근력과 체력을 다지는 동안, 네덜란드 선수들은 에어로빅, 미니게임등을 즐기며 축구를 해왔다. 이 차이가 바로 98 월드컵 당시 5:0의 차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한국 축구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경기장 시설의 확보, 프로축구의 활성화등 해결해야 할 숙제가 많이 남아 있지만, 그 나라 축구의 뿌리가 될 수 있는 유소년 선수들의 육성이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이 된다. 터무니 없이 적은 선수저변을 비롯해 초등학교 축구팀만 해도 일본의 절반은 커녕 10분의 1 수준이라고 하니, 한국 축구의 환경은 아프리카 몇몇 나라의 생활 환경보다도 열악한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네덜란드를 비롯한 유럽의 과학적이고 선진적인 육성 프로그램을 받아들여, 밑거름부터 차근차근 다져나가는 자세로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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