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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교사의 자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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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주철환
JTBC 편성본부장

현직 교사들과 어울릴 기회가 더러 있다. 전직 교사로서 선호하는 자리다. 먼저 교사와 PD는 비슷한 일을 한다는 말로 동지의식을 드러낸다. “학생, 혹은 시청자의 행복을 위해 준비하고 실행한다는 게 닮은 점이죠.” 그러나 인생에 미치는 영향력은 교사가 훨씬 크다. TV는 끄거나 돌리면 되지만 학생은 교사를 거부할 수 없다. 시청자를 오랫동안 지루하게 만드는 PD는 없다. 이미 채널이 돌아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사는 한 시간, 한 학기, 아니 일 년 동안 채널을 독점한다. 재미없다고 말하는 시청자를 원망하는 PD는 함량 미달이지만 흥미 없는 수업을 하면서 주목을 강요하는 교사 또한 역량 부족이다.

 “천국이라는 학교에 입학사정관이 있다면 면접에서 어떤 질문이 나올까요?” 얼마 전 모임에서 나 스스로 주고받은 문답이다. “관심 있는 숫자는 생년월일, 수능점수, 건평, 계좌번호가 아닐 겁니다. 살면서 몇 명에게 희망을 주었느냐, 몇 명에게 겁을 주었느냐. 아마 이런 게 평가항목 아닐까요?”

[일러스트=백두리]

 모임이 끝난 후 전해 듣기로는 몇몇 선생님들이 ‘난 천국 가기 어렵겠는데’라며 한숨을 내쉬더란 얘기다. 그렇다면 이번엔 내가 지옥 갈 차례다. 선생님들께 희망을 안긴 게 아니라 겁을 준 형국이기 때문이다. 다시 만난다면 이렇게 보충해 주고 싶다. “학생에게 겁만 주고 끝낸다면 천국행은 어렵겠죠. 그러나 ‘지금처럼 하면 안 돼’라고 일단 경고한 뒤 그 학생이 달라질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친절하게 알려준 후 계속 지도한다면 천국은 선생님께 문을 열어줄 겁니다.”

 ‘넌 안 돼’라는 말은 교사의 언어가 아니다. ‘너에겐 희망이 없다’라고 말하는 건 악마의 예측이다. 희망이란 변화의 가능성이다. 성장시켜 달라고 학교에 맡긴 것이다. 그런데 교사가 조용한 애, 떠드는 애로 일찍이 편을 가르고 점수 높은 애, 점수 낮은 애로 나누어 대우한대서야 될 일인가. 태어날 때부터 똑똑한 사람은 희망이 아니라 선망의 대상이다. 선망을 부추기는 교실은 감옥이거나 지옥이다. 똑똑한 사람을 키우는 것도 좋지만 착한 사람으로 기르는 게 우선이다. 교사는 눈을 씻고 찾아야 한다. 우는 아이 웃게 하고 맞는 아이 구해내야 한다.

 ‘교사도 사람인데’라고 우길 셈인가. 맞는 말이지만 교사는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 교사도 화날 수 있다. 그러나 화나는 것과 화내는 것은 천지 차이다. 화나는 건 불이 난 것이다. 불은 끄면 된다. 그러나 화를 내는 건 불을 내는 것이다. 교사가 교실에 불 질러서야 될 일인가.

 좋은 사람은 도움을 주는 사람이다. PD는 시청자에게, 교사는 학생에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 어떤 학생에겐 좋고 어떤 학생에겐 나쁜 경우라면 문제다. 모두에게 겁을 주었으니 나는 공평한 사람이라고 자부해서도 곤란하다. 겁이 아니라 희망을 주는 게 교사의 역할이다. 따라서 교사는 매우 어려운 직업이다. 어려운 일에 도전했기 때문에 교사를 존경하는 것이다.

 학교폭력 문제가 심각하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통령도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다짐했다. 누군가 죽어야 대책이 나온다면 서글픈 일이다. 교사는 학생의 슬픔을 눈치채야 한다. 그게 교사의 책무다. 점심시간에 빈 교실에서 울고 있는 아이가 있다고 치자. 그 순간 바로 관심제자로 등록하고 전방위로 체크해야 한다. 주변 학생, 당사자의 부모를 만나서 꼼꼼하게 묻고 공동전선을 구축해야 한다. 그럴 시간이 없다고 한다면 다른 시간을 줄여야 한다. 아니면 다른 직업을 택해야 한다.

주철환 JTBC 편성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