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미스트] 화장실 청소하는 화장품회사 사장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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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을 청소하는 사장님이 있다. 사장이 청결을 중시하며 가장 궂은 일을 하자 창업 1년반 만에 매출액 1백20억원을 기록하며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방식으로 화장품 시장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충북 음성에 있는 (주)
LCC는 화장품 업계에서 24년간 잔뼈가 굵은 백성천 사장(54)
이 만든 회사. 지난해 하반기 창업과 동시에 청결·품질을 최우선으로 하는 독일 BDF사의 피부관리 화장품인 ‘니베아’의 제조를 맡을 만큼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LCC에서는 매일 아침 독특한 장면이 펼쳐진다. 白사장을 비롯한 간부·사무 직원들이 정문 앞에 도열해 출근하는 생산 직원들을 ‘영접’하는 것.

“안녕하십니까? 좋은 하루 되십시오”하고 손을 흔들며 인사한다. 처음에는 무표정하던 생산직 사원들도 이제는 반갑게 응대한다.

이어 청소시간. 화장품을 제조하는 만큼 청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이 회사에는 청소원이 없다. 대신 사원 모두가 청소원이다. 그 중에 으뜸은 사장. 白사장은 매일 아침 자신의 청소구역인 본관 화장실을 청소한다.

그가 화장실을 청소하는 것은 품질 최우선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마음의 때를 벗기고, 가장 낮은 위치의 화장실을 최상의 장소로 만들듯 최고 품질의 제품을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화장실 청소는 간부나 고참 사원의 몫이다. 일반 사원들은 이 시간에 자신의 기계나 사무실을 청소한다. 청소를 마친 뒤 ‘혁신 체조’로 몸을 푼 뒤 근무에 들어간다. 생산현장에서도 품질 제일주의 신념이 배어 난다. 생산직 사원도 넥타이를 매고 일한다. 자기가 만드는 제품에 대한 경의와 자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한 것. 불량품을 발견하면 포상을 받는다.

협력업체가 불량자재를 납품하면 경고를 받는다. 1차로 대금결제에 불이익을 받는다.

이후로도 개선되지 않으면 2차 경고와 함께 거래정지로 이어진다. 반면 이전보다 좋은 품질을 납품하면 장려금을 준다. 협력업체를 정기적으로 방문해 애로사항을 듣고 품질개선방안을 같이 연구한다.

이같은 노력으로 일체의 틈을 허용하지 않는 ‘독일 병정’ BDF사로부터 “자체 검사로 충분하다”는 품질 합격판정을 지난해 받았다. 올해부터는 ‘부자재 불량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협력업체의 품질수준 향상에도 노력하고 있다. 이 결과 품질이 좋으면서도 값은 싸 니베아는 물론 LG화학의 대표적 브랜드인 드봉을 OEM 방식으로 납품하는가 하면 국내외 특급 호텔에도 객실용 화장품을 공급해 올해 매출 2백억원대를 바라보고 있다.

白사장의 모토는 ‘백년기업’. 자신이 사라져도 영속하는 기업이다. 때문에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공장을 멈추고 수천만원을 들여 전직원이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연수를 받았다. 국제화 인재로 키우려고 생산직 사원도 해외에 출장을 보낸다.

LCC에는 경리사원이 없다. 모든 은행거래는 컴퓨터 디스켓 하나로 처리된다. 협력업체로부터 명절 때 선물은 꿈도 못꾼다. 유리알 경영은 그에 맞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지난해 1억2천만원을 투자해 전산화했다. 누구나 단말기를 통해 회사경영 상황을 알 수 있다. 장차는 결재 없는 회사를 만들 방침이다. 화장실 청소 등 솔선수범을 철칙으로 하는 白사장은 “LCC는 사원 모두의 회사”라며 “작지만 세계적인 화장품 회사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음성=이석봉 중앙일보 기자 <factfin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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