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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키우는 건 침묵” … 아들 잃고 행동에 나서 법 제정 끌어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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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종기 청예단 명예 이사장(가운데)이 1일 경기도 용인 자택에서 외손녀인 주예나(오른쪽)·예은이와 게임을 하고 있다. [용인=김성룡 기자]

김종기(64) 청소년폭력예방재단(청예단) 명예이사장은 지난해 말 대구 중학생 권모(13)군의 자살 소식을 접하고는 하루 종일 무력감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래 전 그날의 악몽이 떠올라서다.

 1995년 6월 6일 새벽. 고교 1년생이던 아들 대현이는 ‘이젠 쉬고 싶다’는 메모만을 남기고 아파트 4층 자신의 방에서 뛰어내렸다. 주차된 차 위에 떨어져 첫 시도가 실패하자 한층 더 올라가 다시 몸을 던졌다고 한다.

 “가족에 대한 미안함으로 망설였는지 집 앞에 아이의 핏자국이 있었어요. 그때 초인종만 눌렀어도….” 김 이사장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는 잘나가는 직장인이 었다. 국내 굴지의 전자회사를 거쳐 중견그룹 기획조정실장으로 근무했다. 아버지를 닮은 대현이는 준수한 외모에 성격도 서글서글해 인기가 많았다고 했다. 학교엔 여학생들이 만든 팬클럽까지 생겼다.

 그런 아들을 죽음으로 내몬 건 학교폭력이었다. 고교 입학 후 2학년 남학생 5명이 대현이를 괴롭혔다. 이유는 ‘얄미워서’ ‘부러워서’ ‘여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해서’였다. 각목까지 휘두르며 폭행했다. 아들은 온몸에 멍이 든 채로, 때론 신발을 뺏겨 맨발로 집에 돌아왔다. 그저 “동네 불량배들한테 잘못 걸렸다”고만 했다. “집에 알리면 불을 지르고 가족들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 때문이었다.

1980년대 후반 홍콩지사 근무 시절 김종기 이사장(왼쪽)의 가족 사진. 초등생이던 아들 대현(가운데)은 홍콩 국제학교에서도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아들의 유골을 속초 앞바다에 뿌리곤 학교를 찾아가 가해자 얘기를 꺼냈다. 하지만 담임은 “우리 학교엔 그런 일이 없다”며 사실 자체를 완강히 부인했다. 그러나 두 달 뒤 가해자들은 또 다른 학생의 팔을 부러뜨리고 기절할 때까지 때렸다. 이 소식을 접한 김 이사장이 수사를 의뢰하기 위해 피해자 가족을 접촉했지만 “아이가 공부해야 한다”며 진술을 거부했다. 결국 가해 학생들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내 아이, 우리 학교만 아니면 된다’는 침묵이 폭력을 더 키웠던 겁니다.” 95년 8월 김 이사장은 아들의 사연을 언론 인터뷰를 통해 폭로했다. 11월에는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을 만들었다. 학교·정부가 외면하는 학교폭력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서였다.

 상근 직원들의 월급을 못 줄 만큼 재정난도 있었지만 김 이사장은 그때마다 “내가 하늘나라에서 대현이를 떳떳하게 보려면 학교폭력을 없애야 한다”는 생각에 맘을 다잡았다.

 청예단 활동으로 학교폭력의 심각성이 부각되면서 97년 청소년보호법이 제정됐다. 2004년엔 학교폭력 예방법 제정을 위해 5만 명의 서명을 받기도 했다. 청예단은 전국에 13개 지부를 두고 매년 55만 명에게 학교폭력 예방 교육을 한다. 6만 건의 상담도 진행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시간이 흐른 뒤 대구 자살 중학생의 부모에게 편지를 쓸 생각이다. “아이를 잃은 부모 마음은 내가 잘 알지요. 지금의 고통이 10이라면 나중엔 100이 되고 1000이 됩니다. 그걸 사회가 보듬어줘야 합니다.”

글=이한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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