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 두뇌들 재래시장에 '둥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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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대문.남대문 등 재래시장에 고급 인력이 몰려들고 있다.

재래시장은 그동안 국내 대졸 출신의 인력도 찾아보기 힘든 곳이었으나 최근 해외유학파나 전문직 출신까지 찾아들고 있다.

할인점 등 대형 유통업체들의 공격으로 설 자리를 잃어가는 재래시장에 전문지식과 정보화로 활력을 불어넣는 신진세력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지난 6월초 문을 연 명동 밀리오레의 2층에서 ''이마쌍스'' 라는 여성의류 점포를 운영하는 김정선(37)씨는 미국 공인회계사(CPA) 출신이다.

뉴욕 롱아일랜드대학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마친 뒤 뉴욕주에서 공인회계사로 활동하다가 1994년 귀국, 국내 유명 회계법인에 근무했다.

평소 패션에 꿈을 두고 패션전문학원까지 수료했던 金씨는 마침 명동 밀리오레가 개점하자 이곳에 가게를 열었다.

그는 현재 회계와 경영에 관한 자신의 지식을 바탕으로 밀리오레 1천2백개 점포 중 매출면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명동 밀리오레 3층에서 ''띠모'' 매장을 운영하는 김영준(34).이경신(35)부부는 프랑스 유학파다.

프랑스 파리 1대학 법대를 졸업한 남편 金씨는 명동 밀리오레에서 운영기획실장을 맡아 상인영입.상가관리.기획 등의 일도 하고 있다.

부인 李씨는 파리의 유명 패션학원 ''에스모드'' 출신으로, 대기업 디자이너의 유혹을 물리치고 남편과 함께 가게를 꾸려가고 있다.

지난 5월 지하철 4호선 회현역 옆 남대문시장 언저리에 문을 연 엑세서리 공동판매상가 시티액세서리몰은 신세계 MD사업부 강남점 추진팀 부장으로 근무하던 박하동(44)씨를 고문 겸 운영위원으로 영입했다.

시티액세서리몰의 한성현 실장은 "朴부장이 가지고 있는 대형백화점 유통전략과 시장 상인들의 경험이 어우려져 여러 가지 효과를 보고 있다" 고 말했다.

을지로 5가 중부시장에서 20년 가까이 수산물 가게 ''인성상회'' 를 운영해 온 안재경(38)사장은 지난 6월 중부시장을 대표하는 인터넷 쇼핑몰(http://www.chungbumarket.com)을 열었다.

安사장은 이를 위해 20대의 젊은 웹디자이너.웹마스터 등을 고용했다.

40여년 동안 이어온 건어물 재래시장을 인터넷 기반의 쇼핑몰로 바꾸겠다는 게 安사장의 복안이다.

동대문시장 패션의류 도매상가 디자이너크럽은 압구정점 개점을 3개월 앞둔 지난 6월 기획홍보 담당 상무로 강승규(37)씨를 영입했다.

그는 98년까지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로 근무하다가 서울시 시정개발연구원 초빙연구위원과 미디어시티 서울 조직위원회 사무국장을 지냈다.

압구정 디자이너크럽의 기획업무를 총괄 지휘하되, 재래시장이 취약한 인터넷 전자상거래를 도입하는 게 주 임무다.

아주대 경영학과 황의록 교수(유통학회 부회장)는 "젊은 엘리트들이 찾아들면서 재래시장이 많이 바뀌고 있다" 며 "이들은 적은 자본으로도 꿈을 펼칠 수 있는 재래시장을 하나의 미래벤처산업으로 인식하고 있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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