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공업용 유방 보형물 공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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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니스의 한 병원에서 성형외과 의사가 26일(현지시간) 폴리 앵플랑 프로테즈(PIP)의 유방 보형물을 들고 있다. [니스 로이터=뉴시스]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불안해요. 몸에 시한폭탄을 달고 사는 기분입니다.”

 ‘공업용 유방 보형물’로 가슴 수술을 받은 프랑스 노르망디 출신 47세 여성의 걱정이다. 월급 150만원을 쪼개 모은 돈으로 40대 들어 간신히 수술을 받았건만 기쁨은 잠깐이었다. 우울증까지 도졌다. 수술 전의 극심한 몸매 콤플렉스가 수술 후엔 부작용 걱정으로 바뀐 것이다.

 공업용 보형물 파문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프랑스 폴리 앵플랑 프로테즈(PIP)는 보형물 제작단가를 낮추기 위해 의료용에 비해 가격이 3분의 1에 지나지 않는 공업용 실리콘겔을 사용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해당 제품으로 수술받은 전 세계 여성 30만 명이 공포에 떨고 있다. 26일(현지시간) 네덜란드 보건부가 “PIP 보형물이 ‘M-임플란트’란 상표로 네덜란드 여성 1000여 명에게 판매됐다”고 밝혀 피해 여성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PIP는 세계 3위의 유방 보형물 업체였다. 연간 10만 개를 생산해 이 중 84%를 유럽·라틴아메리카 등 세계 65개국에 팔았다. 이 보형물은 한때 자연스러운 모양으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지금은 부작용의 폭풍이 거세다. 1000여 명이 파열을 겪었고 지난 11월엔 마르세유에 살던 여성 1명이 그 후유증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외에도 프랑스에서만 8명이 유방암·림프종·백혈병을 앓고 있다. 프랑스 보건당국은 “보형물과 암 사이의 연관성은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조만간 PIP 임직원 4~6명에 대해 사기 및 기만 혐의로 형사고발할 것이라고 발표하는 등 파장을 줄이는 데 부심하고 있다. 1996년부터 수십 건의 소송을 당한 PIP는 지난해 3월 안전성과 기능 이상 문제로 리콜 파문을 겪은 이후 파산했다. 책임을 떠안을 주체가 없어지다시피 한 것이다.

 결국 프랑스 정부가 나섰다. 자비에 베르트랑 프랑스 보건부 장관은 지난 23일 “문제 보형물을 이식한 여성 전원에게 제거 수술을 권고하고 비용 전액을 건강보험에서 부담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아르헨티나·브라질 등 남미에서도 무료 재수술을 요구하는 집단소송이 시작됐다. 특히 베네수엘라의 경우 부모가 딸의 15세 생일 기념 선물로 수술을 해주는 등 유방 수술이 보편화돼 있어 문제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아랍에미리트 보건당국도 위험성을 경고했다. 이스라엘도 피해 여성을 위한 핫라인을 개설하는 등 관련 조치에 나섰다.

 한편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청은 “프랑스 PIP의 보형물은 수입허가를 내준 적이 없다”고 밝혔다. 국내 유통 중인 실리콘겔 인공유방은 모두 미국 앨러건·멘토 제품이다.

민경원·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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