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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번지점프 했으면 …” 심장수술 민주씨 새해 소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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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이가 심장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설거지를 하다가도, 텔레비전을 보다가도 눈물이 쏟아져 혼났단다. 유정이의 조그마한 가슴에 남을 흉터를 볼 때마다 또 얼마나 울지…. (중략) 소중한 내 딸아, 딱 올해까지만 아프고 내년부터는 전보다 더 튼튼하고 밝은 우리 딸이 되어주길 바란다. 사랑한다.”

지난 20일 건국대병원에 입원 중인 암 환자들이 새해 소원을 담은 카드를 ‘소망 트리’에 걸고 환하게 웃었다. [김수정 인턴기자]

 송유정(가명·4·충남 서산시)양의 어머니가 카드에 새해 소망을 적어 ‘소망 트리’에 걸었다. 검은색 볼펜으로 꾹꾹 눌러 빼곡히 썼다. 송양은 이달 초 선천적으로 심장 판막(심장에서 혈액이 거꾸로 흐르는 것을 막는 막)에 이상이 생긴 ‘승모판 폐쇄부전증’으로 수술을 받고 퇴원했다. 하지만 최근 폐렴에 따른 고열로 2주 만에 다시 입원했다. 송양의 어머니는 딸에 대한 미안함과 전하지 못한 사랑을 소망카드에 담았다.

 서울 광진구 건국대병원은 19, 20일 입원환자와 가족에게 소망카드를 받아 병원 5층에 마련한 소망 트리를 장식했다. 이 병원 양정현 의료원장은 “새해를 앞두고 병마와 싸우는 환자들의 소망이 이뤄지길 기원하기 위해 준비했다”고 말했다. 유치원생부터 80대 노인 환자까지 소망 트리 꾸미기에 참여했다. 이들의 새해 꿈은 무엇일까.

  심장외과 병동이 있는 병원 5층 5104호에선 “흡~” 하며 길게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심장수술을 받은 환자들이 심폐기능을 높이기 위해 호흡기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8년 전 뉴질랜드로 이민 간 장민주(가명·49·여)씨도 열심이다.

 장씨는 5년 전부터 이유 없이 피곤하고 헛기침이 나와 검사를 받았다. 그 결과 심장 판막에 문제(승모판 폐쇄부전증)가 생겨 심장의 피가 역류했다. 수술 후 회복 중인 그는 “가족과 지인들을 위해 요리하고, 남편과 번지점프를 하고 싶다”고 소망을 밝혔다.

 7층 소아병동. 7111호는 소아 중환자실이다. 선천성 심장병 중에서도 중증인 아이들이 입원해 있다.

 이승호(가명·2·경기도 오산시)군은 심장수술만 세 번째다. 태어날 때부터 좌우 심실이 하나로 합쳐진 단심증을 앓고 있다. 심장의 수축과 이완에 문제가 생겨 많은 합병증이 생긴다. 이 군은 심장병 외에 장애가 몇 개 더 있다. 

다행히 이군의 세 번째 심장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이군의 어머니는 “승호가 재활운동을 열심히 해서 방긋방긋 웃고 모든 사물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이군과 송양을 수술한 건국대병원 흉부외과 서동만 교수는 “선천성 심장병 발병률은 0.8~1%”라며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면 심장 기능이 90%까지 회복된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응급실을 찾은 7104호 반은비(가명·7·서울 성동구)양은 링거를 꽂고도 천진난만하다. 병명은 변비였다. 4일간 좌약을 사용해 변을 뺐다. 댄스 선생님이 꿈인 반양은 산타클로스가 그려진 소망카드에 “댄스 잘하고 싶습니다. 산타 할아버지. 사랑해요”라고 썼다. 정지훈(가명·6·서울 광진구)군은 폐렴으로 체온이 40도까지 올라 입원했다. 자동차 매니어인 정군의 꿈이 야무지다. 아빠, 엄마, 누나, 삼촌, 외숙모 모두에게 BMW 사드릴 거예요.”

 병원 5층에는 좌우로 암 병동과 흉부외과 병동이 있다. 5204호 암 병실의 분위기가 화기애애하다. 대장암 2기여서 수술을 받은 김정숙(65·여·경기도 시흥)씨와 박둘선(64·여·경남 함양군)씨의 새해 소망이 같기 때문이다. 김씨는 37세 외아들을, 박씨는 36세 막내아들을 장가보내는 게 내년 목표다.

 건국대병원 황대용 대장암센터장은 “50세가 넘었는데 대장내시경 경험이 없다면 대장암 예방을 위해 꼭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양광식(44·남·서울 광진구)씨는 5202호 무균실에 있다. 2005년 신부전증으로 진단받고 투석을 시작했다. 그렇게 7년이 흐르고 이달 7일 아내의 신장을 이식 받았다. 임진년(壬辰年) 양씨의 소원은 대학에 입학한 첫째 딸이 적응을 잘하고, 다섯 명의 가족이 공기 좋은 곳으로 여행가는 것이다.

 소망 트리에는 이외에도 새해를 건강하게 맞이하려는 환자들의 다양한 소망이 담겨 있다. 병상에서 느낀 가족에 대한 애달픈 사랑도 녹아 있다. 흡연 때문에 발가락이 썩는 버거병에 걸린 강진우(가명·44·서울 중랑구)씨는 “담배와 술을 배운 걸 후회한다. 빨리 아이들을 만나고 싶다”고 적었다. 양정현 의료원장은 “앞으로 환자와 가족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캠페인을 지속하겠다”고 말했다.

황운하 기자
사진=김수정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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