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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당 300만원 세금폭탄" 김해 경전철 재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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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일 오후 6시30분쯤 대저역을 출발한 부산~김해 경전철 내부 모습. 하루 중 사람이 가장 붐비는 퇴근길 러시아워임에도 빈자리가 있을 정도로 한산한 모습이다. [박민제 기자]

매년 말 정부 예산을 결정짓는 국회 예결특위 계수조정소위원회. 세금 낭비를 감시해야 할 이곳에서 혈세가 새고 있다. 지역구 ‘표’를 의식한 의원들이 ‘쪽지 민원’을 넣어 선심성 사업을 위한 예산을 챙기는 탓이다. 초기엔 10억~20억원에 불과하지만 사업성 검토 없이 시작된 ‘쪽지사업’은 수천억원 예산을 낭비하는 애물단지로 전락하기 일쑤다.

지난 10월 20일 오후 6시 호남고속도로 동광주 나들목~고서 분기점 구간. 퇴근길 러시아워인데도 한적하다. 시속 100㎞로 질주하던 차들은 동광주 요금소에서 잠시 속도를 줄이지만 대기시간은 길어야 30초 남짓. 요금소 관계자는 “교통량이 적어 명절·바캉스철을 제외하고는 한 방향 요금부스 11개 중 5개만 쓴다”고 말했다.

 이 구간은 한국도로공사가 총 1195억원을 들여 확장했다. 예산이 배정된 것은 2002년 말. 정부안에는 없었지만 국회 예결특위 계수조정소위에서 100억원이 갑자기 증액됐다. 이듬해 감사원이 비효율적 사업이라고 지적했지만 별 탈 없이 2005년 공사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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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년여 공사로 4차선 도로는 6차선으로 넓어졌지만 통행량은 오히려 줄었다. 올해 하루 평균 통행량(11월 현재)은 4만2494대로 공사 전인 2002년(4만2741대)보다 적다. 동광주 요금소 하루 적정 처리 차량 대수(21만3888대)의 5분의 1에 불과하다.

 다른 교통 대안들을 무시하고 사업을 밀어붙인 결과다. 호남고속도로 이용자 중 상당수는 2006년 완공된 고창~담양 고속도로를 통해 시내 혼잡구간을 피해간다. 광산구에 사는 양명호(46)씨는 “상습 정체 구간을 놔두고 쓸 데 없는 곳을 확장했다”고 지적했다.

 부산~김해 경전철 재앙도 국회가 씨앗을 뿌렸다. 이 사업은 1992년 8월 정부 시범사업으로 선정됐지만 시행 여부는 불투명했다. 하지만 그해 말 당시 민자당의 한 국회의원이 계수조정소위를 통해 5억원의 조사비를 예산안에 끼워넣으면서 시작됐다. 일단 문지방만 넘고 보자며 밀어넣은 이른바 ‘문지방 예산’이다.

 이후 경제성 없다는 지적이 잇따랐지만 민간사업자가 선정됐고, 2006년 공사에 들어가 지난 9월 개통됐다. 총 공사비 1조3000억원 중 4925억원을 세금으로 메웠다. 하지만 개통 후 하루 평균 승객은 3만여 명. 예상치(17만6358명)의 17.2%에 불과하다. 승객 수가 늘지 않으면 향후 20년간 연평균 1045억원의 혈세를 민간사업자에게 물어줄 판이다.

 경남도 의회 공윤권 의원은 “수요 예측이 부풀려진 게 눈에 보였는데도 지역 정치인들이 계속 예산안에 사업비를 넣었다”며 “이로 인해 김해 시민은 1인당 총 300만원이라는 세금폭탄을 맞게 됐다”고 말했다.

 2001년 말 국회에서 사업비 10억원이 증액되면서 시작된 대전컨벤션센터. 사전 검증이 부족했던 사업이 지속적 부실을 낳게 되는 경우다. 국제 규모의 컨벤션센터를 지향한 이 사업은 경실련이 “기본계획조차 없는데 예산부터 배정됐다”며 예산 집행 유보를 요구했으나 그대로 진행됐다.

 결국 2008년 4월 완공 후 기대와는 달리 소규모 지역행사만 근근이 유치하는 ‘지역 사랑방’으로 전락했다. 지난해 유치한 481건의 회의 중 참가자 1000명 이상의 대규모 국제회의는 13건에 그쳤다. 전시 컨벤션 산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숙박·관광 시설이 미흡한 상황에서 건물만 달랑 지어 놓은 게 화근이었다. 총 510억원의 예산이 들었지만 매년 30억~40억원의 적자를 내고 있다. 올해까지 누적 적자만 142억원. 올해 가동률도 지난 9월 기준 45.2%에 불과하다. 대전시는 센터 활성화를 위해 내년 이후 세금 728억원을 추가로 투자해 인근 KOTRA 대전무역전시관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전시장 규모를 확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대전시 관계자는 “컨벤션센터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민간 호텔을 유치하고 엑스포과학공원을 재개장해 관광 수요를 충족시키는 방안도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정현 대전광역시의원은 “다른 도시에서 전시·컨벤션 사업이 잘된다고 하니 예산부터 확보하고 보자는 식으로 사업을 시작한 게 문제”라며 “예산을 따오는 것은 지역 주민으로서 환영할 일이지만 사전에 용도를 충분히 고민하고 검토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문지방 예산=충분한 사전 검증 없이 조사·설계비 명목으로 10억~20억원의 소액을 예산안에 끼워넣고 시작하는 사업의 예산. 일단 문지방을 넘은 사업은 추가 예산이 관성적으로 투입된다.

탐사팀=이승녕·고성표·박민제·위문희 기자, 이정화 정보검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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