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자구안 타결 의미] 자금사정 숨통

중앙일보

입력

현대는 정주영(鄭周永)전 명예회장의 지분정리를 통한 자동차 계열분리로 다섯달 이상 끌던 현대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현대건설은 지주회사로 갖고있던 현대상선과 현대중공업 지분을 내놓아 현대는 사실상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지배하던 그룹의 연결고리가 끊길 전망이다.

채권단이 현대건설의 자금난을 빌미로 압박하자 버티기로 일관하던 현대가 요구사항을 대부분 수용했다. 창업자인 정주영 전 명예회장은 사실상 사재출연을 통해 현대건설에 자금을 긴급 수혈했다.

그러나 정몽구 현대차 회장이 3부자 동반퇴진에 반발하는데다 현대중공업마저 계열분리가 기대한 것보다 늦어지자 이의를 제기하는 등 문제가 남아있다.

◇ 현대 계열분리로 뭐가 바뀌나=현대는 자구안 발표로 현대건설의 자금난에 숨통이 트이고,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실질적인 재산분할이 이뤄져 형제간 다툼이 일단락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한국기업평가가 현대건설.고려산업개발 등 8개사의 회사채에 대한 신용등급을 투기등급으로 낮췄다.한기평은 당시 그 이유로 현대자동차 계열분리 등 미흡한 구조조정을 들었다.

현대는 따라서 이번 계열분리로 신용등급이 높아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

신용등급이 높아지면 현대건설의 경우 당장 필요한 1천억원대의 신규대출이 이뤄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현대는 지난해 말 기준 부채가 69조1천5백억원으로 여신한도를 훨씬 넘겨 규제를 받았는데, 현대자동차 계열사 부채(20조6천5백억원)를 떨궈냄으로써 여유가 생기게 됐다. 이렇게 되면 현대그룹 전체적으로 2조~3조원의 여신한도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는 또 1998년부터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여러차례 발표했지만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시장의 신뢰를 받지 못했다.

해외 금융기관 전문가들이 "현대의 구조조정은 후계구도를 갖춰논 것 외에는 이뤄진 게 없다" 고 지적할 정도다.

그런데 이번 자동차 계열분리를 계기로 현대가 계획한 5대 핵심업종으로의 분할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현대그룹은 자동차뿐만 아니라 중공업을 분리하고 2003년에는 건설.전자.금융/서비스 등도 전문경영인 체제를 갖추겠다는 청사진을 갖고있다.

◇ 쉽지않은 과제 세가지=현대의 자구방안 발표가 있자마자 현대중공업측이 계열분리할 의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현대중공업은 내년초까지 계열분리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던 기대를 벗어나 1년 정도 더 늦춰진 발표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현대그룹측은 "중공업 분리를 위해서는 지분정리나 지급보증 해소 등 사안이 복잡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일러야 내년 6월말에나 가능할 것" 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중공업측은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데 이를 무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고 반박했다.

가신그룹 처리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현대 관계자는 "경영진 퇴진여부는 이사회.주총에서 평가하고 그때 가서 결정할 문제" 라면서도 "어느 한 사람에게 경영부실의 책임을 뒤집어 씌우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게 정몽헌 회장의 생각으로 안다" 고 말해 쉽게 풀릴 문제가 아님을 시사했다.

채권단과 현대가 3부자 퇴진 및 경영진 퇴진은 선언적인 형태로 문구를 넣기로 이면 합의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재계는 3부자 동반 퇴진도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 관계자는 "정몽구 회장의 퇴진은 본인이 판단할 문제" 라며 "鄭전명예회장이 같이 물러나자고 발표한 것을 본인이 거부한 것인데 우리가 뭐라 할 입장이 못된다" 고 말했다.

정몽구 회장측은 여전히 경영에서 손 뗄 생각이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