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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클레오파트라 팜므파탈? … 그녀는 탁월한 통치자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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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더 퀸 클레오파트라
스테이시 시프 지음
정경옥 옮김, 21세기북스
512쪽, 1만8500원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역사의 뒤안길로 쓸쓸히 사라진 패자의 기록은 늘 일그러지게 마련이다. 신화시대 이후 최초의 ‘팜므 파탈(Femme fatale·남성을 파멸로 이끄는 ‘치명적인 여인’이라는 뜻의 프랑스어)’인 클레오파트라(클레오파트라 7세, BC 69~BC30)도 마찬가지다.

 그의 불꽃 같던 삶은 2000년이라는 세월의 간극을 훌쩍 뛰어넘어 여전히 위대한 극작가와 시인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매력적인 소재다. 하지만 실상 클레오파트라의 삶에 대해 알려진 바는 많지 않다. 그의 모습이 새겨진 동전 외에 클레오파트라의 진짜 얼굴을 알 수 있는 어떤 기록도 없다. 1963년 클레오파트라 역을 맡았던 영화배우 고(故) 엘리자베스 테일러(사진)가 클레오파트라의 현신(現身)처럼 여겨진 것도 그런 까닭이다.

 퓰리처상을 받은 전기작가 스테이시 시프는 역사에서 흐릿한 기록으로, 사라진 흔적으로 남아 있는 클레오파트라의 궤적을 쫓는다. 저자는 “이야기 속의 구멍은 우리를 그녀의 마법 속에 가둬놓는다”며 역사와 문학이 부풀려 놓은 마법 풀기에 나선다.

 로마 영웅인 카이사르·안토니우스와의 스캔들과 독사가 가슴을 물게 해 자살한 극적인 죽음까지 클레오파트라의 삶은 ‘막장 드라마’에 가깝다. 하지만 실제로 그는 탁월한 정치적 능력과 외교적 수완을 갖춘 왕이었다. 함선을 건조하고 반란을 진압하며 재정난에 직면한 국고를 채우기 위해 통화를 조절하는 한편 기근을 다스릴 줄 아는 영리한 통치자였다. 그가 집권하는 동안 이집트에서 반란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도 그의 리더십을 드러낸다.

 저자는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와의 염문도 풍전등화에 놓인 이집트를 구하려는 클레오파트라와 전비 충당을 위한 든든한 돈줄이 필요했던 두 명의 영웅 사이에 이뤄진 동맹의 성격이 강하다고 분석한다. 지중해 지역에서 막대한 곡물을 생산했던 이집트는 로마에게 ‘파괴하기에는 손해이고 합병하기에는 위험하고 통치하기에는 문제가 있는 나라’였기 때문이다.

 역사를 풍미한 인물이 떠오르고 스러졌던 거물의 시대에서 클레오파트라는 팔색조처럼 변신하며 자신의 땅인, 그의 왕국인 이집트를 지키기 위해 위태로운 줄타기를 했던 강한 여인이었다. 그에게 ‘악녀’라는 오명을 씌운 것은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를 영웅으로 만들기 위한 ‘남성의 두려움’이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집트를 통치했던 프톨레마이오스 가문의 마지막 왕으로 로마 공화정과 헬레니즘 시대의 막을 내린 클레오파트라는 이 말로 대변될 듯하다. “클레오파트라는 유혹만 하는 여자가 아니라 현명한 여자이므로 더 불안한 존재다. 치명적인 지성보다 치명적인 매력이 덜 위협적인 법이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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