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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기어이 웃게 만드는 그녀 … 비통한 삶을 웃음으로 견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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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웃는 동안
윤성희 지음, 문학과지성사
311쪽, 1만1000원

제목 ‘웃는 동안’이 정해진 건 4년 전이다. 단순한 이유였다. “앞으로 쓸 단편에 웃는 장면을 하나씩 넣어주고 싶다.” 하긴 지은이가 윤성희(38)다. 뜬금 없는 유머는 그의 유별난 장기다. 윤성희의 인물은 비극적인 삶을 희극적으로 넘기곤 한다. 그래서 작가는 결심했다. “(소설 속) 주인공에게 웃는 동안만이라도 아주 먼 곳으로 여행을 다녀온 기분을 느끼게 해주겠어.”

 그 결심이 책으로 묶인 게 소설집 『웃는 동안』이다. 2007년 가을부터 2011년 가을까지 발표한 단편 10편이 수록됐다. 그 4년 새 작가는 장편 『구경꾼들』을 냈고, 단편 ‘부메랑’으로 올해 황순원문학상(제11회)을 수상했다.

 작가는 “사물과 단어와 풍경을 희미한 끈으로 연결하는” 게 소설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주어와 동사의 아득한 거리, 그 사이에서 수런대는 이야기를 한 편의 소설로 엮어낸다. 상을 받던 날, 그가 말했다. “나는 창작자라기보다 연결하는 사람이다. 주어와 동사 사이에 세상의 아름다움이 모두 들어가 있다.”

 『웃는 동안』에선 어떨까. 이 소설집은 ‘우리들이’(9쪽)란 주어로 시작해 ‘말했다’(281쪽)란 동사로 마무리 된다. 그러니까 작가는 ‘우리들이’와 ‘말했다’ 사이에서 숱한 이야기를 연결한다. 10편의 개별 작품이 담긴 소설집인데도, 마치 하나의 이야기인 듯 읽히는 건 그래서다.

 소설 속 인물은 작가가 공언했듯 종종, 기어이 웃는다. 엉뚱한 우연에 휩싸여 불행한 필연으로 내몰리는 것도 전작들과 닮았다. 이를 테면 ‘어쩌면’에선 죠스바를 먹던 여고생들이 버스가 추락해 갑자기 숨진다. 병으로 일곱 번이나 유언을 남긴 아내가 “어처구니 없게” 심장마비로 죽는가 하면(‘느린 공, 더 느린 공, 아주 느린 공’), 첫 사랑의 남자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반신불수가 되는(‘매일매일 초승달’) 등 소설 속 인물은 엉뚱한 우연 때문에 비극적 상황으로 내몰린다.

 물론 윤성희의 인물은 삶의 비극에 절망하지 않는다. 비통한 삶을 웃음으로 견딘다. 윤성희의 인물이 빛나는 건 우연을 삶의 일부로 수용하고, 기꺼이 긍정하기 때문일 테다. 그들의 엉뚱한 우연에 킥킥대다가도 문득 가슴 한 켠이 묵직해지는 건 그 때문이다.

 사는 게 별 건가. 다들 소설 속 인물처럼 우연히 절망하고 우연히 상처 받으며 살아간다. 그런데 이 비극을 통과할 비기(秘器)가 있다. 웃음이다. 어쨌건 ‘웃는 동안’에는 다른 세계로의 여행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윤성희의 인물은 기어이 웃는다.

 거듭, 소설집 『웃는 동안』은 주어 ‘우리들이’와 동사 ‘말했다’ 사이를 연결하는 이야기다. 삶이라는 우연에 내몰린 우리들의 이야기가 소설 속 캐릭터에 포개졌다. 그래서 이 소설집이 건네는 웃음은 헛헛하다. 삶이라는 우연은 종종 우습지만, 자주 아픈 법이니까.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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