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시설등급 공개…슬그머니 2년 미룬 복지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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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서울 은평구에 사는 주부 유모(29)씨는 요새 세 살배기 아들이 다닐 어린이집을 찾느라 쩔쩔매고 있다. 어린이집에 대한 제대로 된 공식 정보를 얻을 수 없어서다. 유씨는 하는 수 없이 다른 학부모들의 경험담을 들어보고 몇몇 어린이집은 직접 방문도 해봤다. 하지만 마땅한 곳을 찾지 못했다. 유씨는 “정부 인증 어린이집도 막상 가보면 서로 수준 차가 크더라”며 “정부에선 어린이집 평가 결과를 공개한다고 해놓고선 여태 왜 감감무소식인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현장에선 이처럼 학부모들이 보육시설 정보에 목말라 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이달로 예정됐던 어린이집 평가 결과 공개를 슬그머니 2년 뒤로 미룬 것으로 확인됐다. 복지부는 당초 지난 1월 어린이집별 등급과 세부 항목 점수를 연말에 공개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학부모 선택을 돕고 보육시설의 수준 향상을 위해서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복지부 최성락 보육정책관은 15일 “세부 평가 결과를 2013년 하반기에 공개하기로 했다”며 “전국 어린이집에 대한 점검에 필요한 예산과 인력이 부족한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속사정은 좀 다르다. 평가 결과 공개에 대한 어린이집들의 반발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다.

 현재 전국 3만8021개 어린이집 중 정부 인증을 받은 곳은 75% 정도다. 복지부가 운영 실태와 환경, 안전성 등을 심사한 뒤 100점 만점에 75점을 넘기면 인증을 해준다. 인증을 받은 어린이집은 팻말을 붙여 홍보에 활용할 수 있고, 일부 지자체는 보조금 등 인센티브를 주기도 한다.

 우선 아직 인증을 받지 못한 어린이집들의 반대가 심하다. “아직 인증 절차를 거치지도 않았는데 평가 결과를 발표하면 마치 우리는 시설과 환경이 뒤떨어져 인증을 못 받은 것처럼 비쳐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인증을 받은 어린이집들도 내심 불편한 기색이다. 한 어린이집 관계자는 “인증을 받은 어린이집들 간에도 수준 차가 있다”며 “그 사실이 드러나면 유아 모집에 지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고 말했다. 윤덕현 보육시설연합회장은 “복지부의 인증 결과 전면 공개 방침이 나온 후 전국 어린이집 원장들의 항의가 빗발쳤었다”고 밝혔다.

 문제는 복지부가 지난 1월 이 같은 반발을 알면서도 정보 공개를 강행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점이다. 당시에는 인증비율이 63.8%로 현재보다도 적었다. 하지만 인증받은 일부 어린이집에서조차 아동학대나 부실 식재료 사용 문제가 불거지는 등 부모들의 불안감이 확산되자 강경정책을 고수한 것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결과 공개를 2년 뒤로 미루게 돼 복지부가 처음부터 무리한 약속을 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4살짜리 아들을 둔 한 학부모는 “정부가 스스로 한 약속조차 뚜렷한 이유 없이 뒤집는 걸 이해할 수 없다”며 “지금 같아선 2년 뒤에 제대로 도움이 될 정보가 공개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박수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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