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디도스 돈거래 실체 밝혀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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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10·26 재·보선 당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공격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이 박희태 국회의장의 전 비서 김모씨와 디도스 공격 실행자인 강모씨 사이에 총 1억원의 돈거래가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도 경찰은 이 사실을 숨겨오다 14일 뒤늦게 공개해 축소·은폐 수사 의혹이 커지고 있다.

 김씨는 사건 엿새 전인 10월 20일 범행을 주도한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의 전 비서 공모씨에게 1000만원을, 11월 11일에는 강씨의 회사 계좌로 9000만원을 각각 송금한 것으로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가 확인했다. 더구나 김씨로부터 1000만원을 송금 받은 공씨는 10월 31일 공격 실행자인 강씨에게 같은 액수를 입금한 것으로 드러났다. 강씨는 여기에 자신의 돈을 보태 직원들의 급여로 지급했다. 나중에 보낸 9000만원 중 8000만원은 강씨 회사 임원이자 공씨의 고향 친구인 차모씨가 온라인 도박으로 써버린 것으로 수사 결과 나타났다.

 수사에 결정적인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에 대해 경찰은 “강씨가 11월 17일과 26일 5000만원씩 1억원을 김씨에게 갚은 것으로 확인됐고 이자도 받기로 했다”며 개인 간 채무관계로 여겼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범행 대가 등 관련성이 없다고 판단해 지난 8일 수사결과 발표 시 이를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볼 때 이러한 자금 흐름은 김씨가 공씨를 통해 실행자인 강씨에게 일단 착수금 1000만원을 준 뒤 나중에 성공보수로 9000만원을 지급한 것으로 충분히 의심할 수 있다. 수사의 핵심은 배후와 범행 대가를 밝히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경찰은 관련자들의 은행계좌와 신용카드는 물론 e-메일과 통화내역까지 조사했지만 배후 인물을 밝혀낼 만한 자료를 찾지 못했다며 지난 8일 수사를 끝내고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이제 국회의장 전 비서와 디도스 공격 실행자 사이에 수상한 돈거래가 드러나면서 이번 사건이 아무런 대가 없이 이뤄진 공씨의 ‘우발적 단독 범행’이라고 발표했던 경찰은 부실·축소 수사를 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경찰은 이것 외에도 범행 전날 저녁식사 자리에 참석한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의 비서 김모씨의 신원을 공개하지 않았고, 청와대 박모 행정관(3급)이 참석했다는 사실까지 숨겼다. 경찰은 수사결과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으면서 신뢰를 잃었다.

 이제는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에 한 가닥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 검찰은 철저하고도 공정한 수사로 의혹을 말끔히 털어내고 진실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이번 디도스 공격은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의 공정성을 훼손하려고 시도한 사건으로 국민적 관심이 집중돼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검찰이 사건을 말끔히 규명하지 못하면 국정조사나 특검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그럴 경우 이번에는 검찰의 신뢰가 또다시 도마에 오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