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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와 권리가 부딪치고 권리와 책임이 따로 놀 때…조정할 능력이 우리에게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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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사람의 권리라는 것이 어디까지 보장되고 책임은 얼마만큼 져야 하는가. 살다 보면 여러 가지 형태로 맞닥뜨리게 되는 질문이다. 어제 낮 회사에서 가까운 서울역 광장에 들렀다. 광장 한편 천막 안에서 80여 명이 예배를 보고 있었다. 대부분 주변 노숙인이다. 찬송과 설교·기도가 끝나면 모인 이들에게 점심식사가 제공된다. 구호활동은 종교 본연의 취지에 맞는 숭고한 사업이다. 그러나 과거 영국에서는 노숙인 자활을 돕는 시민단체 회원들이 구호활동 중인 종교인들과 자주 마찰을 빚었다. 노숙인의 쉼터 입주를 방해하고 타성에 빠뜨린다는 이유에서였다. 올해 미 하와이주가 시행한 ‘노숙인 문제 대응 90일 계획’에도 공원·거리에서 노숙인에게 먹거리를 제공하지 말라는 지침이 들어 있다.

 요즘 서울역 건너편에서는 5층 건물 리모델링 공사를 놓고 주민과 서울시가 팽팽히 맞서 있다. 서울시는 지난 10월 이 건물을 임대해 ‘노숙인 자유카페’를 만들기로 했다. 서울에는 이미 노숙인 쉼터 39곳과 생활보호센터·상담소들이 있다. 쉼터는 생활수칙을 귀찮아하는 노숙인들 때문에 자리가 남아돈다. 쪽방·응급구호방도 노숙인 시설이다. 서울역파출소 앞 지하보도 한 곳을 막아 80명이 잘 수 있는 공간도 새로 마련했다. 잠자리가 따뜻하도록 전기패널을 깐 이 공간은 내일 정식으로 문을 연다. 여성 노숙인 한두 명을 위해 작은 방을 따로 만들었다. 서울시는 노숙인들이 쉴 수 있는 컨테이너 12개도 준비하고 있다. 서울역 건물과 어울리게 겉을 ‘예술작품’처럼 꾸며서 23일 배치할 예정이다.

 여기에 더해 내놓은 회심작이 ‘자유카페’다. 구속 받기 싫어하는 노숙인들이 24시간 자유롭게, 술에 취해서도 언제든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다. 냉난방·샤워시설에 TV·인터넷도 이용할 수 있다. 아마 1990년대 후반 영국 노동당 정부가 노숙인 대책으로 만들었던 야간센터(night center)·롤링셸터(rolling shelter)·응급쉼터 같은 제도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 같다. 그러나 공사가 시작되자마자 이웃 주민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수백 개의 주변 쪽방·식당 영업이 차질을 빚을까 봐서다. 이런 경우 노숙인 권리가 우선인가, 주민 이익이 우선인가.

 서울역은 지난 8월부터 밤에는 맞이방(대합실) 내에서 노숙인이 잠자지 못하게 막고 있다. 지난 2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야간 노숙 금지조치를 철회하라는 권고문을 의결하겠다고 국토해양부에 알렸다. 8일 열린 회의에서 인권위와 국토부·코레일 양측이 논란을 벌인 끝에 인권위가 일단 한 발 물러섰다. 논란을 지켜보는 심정이 착잡하다. 정책이 따뜻한 것은 좋다. 그러나 다른 권리와 충돌할 때는 합리적인 중간점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사람도 체온이 38도를 넘어서면 위태로워지는 법이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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