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균 기자의 푸드&메드] 당뇨 두려워 설탕 대신 액상과당 먹는건 난센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4면

주부 이윤경(39·여·서울 신길동)씨의 주말 장보기를 따라가보자. 당뇨병 전(前)단계 진단을 받은 뒤부터 백설탕은 절대 먹지 않기로 마음먹은 그다. ‘깐깐한’ 소비자인 이씨는 고추장·토마토케첩 하나도 설탕 대신 물엿이 든 것을 찾아내 장바구니에 집어넣었다. 액상과당이 든 오리엔탈드레싱 소스와 양조간장·소불고기 양념을 샀다. 커피우유·요구르트·두유도 설탕 대신 액상과당이 함유된 것으로 골랐다.

 이날 이씨의 저녁 요리는 오징어 고추장불고기였다. 고추장·간장으로 간을 하고 설탕 대신 물엿을 두 스푼 넣었다. 물엿을 넣어 윤기를 낸 마른 새우볶음과 콩자반을 밑반찬으로 내놓았다.

 이씨의 저녁 식사는 과연 웰빙 밥상일까? 요리에서 설탕을 배제하기 위해 노력한 것은 가상하다. 하지만 (이씨가) 선택한 액상과당·콘시럽·요리당 등은 HFCS로, 설탕과 별로 다를 바 없다.

 HFCS(고과당 옥수수시럽)는 옥수수 포도당을 과당으로 전환시킨 설탕 대체재다(임경숙 수원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국내에선 다수 소비자들이 ‘설탕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지만 요즘 미국의 유명 식품회사들은 자사 제품에서 ‘HFCS 빼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

 최근 몇 년 새 커피 전문체인인 ‘스타벅스’는 페이스트리류에, ‘펩시코’는 펩시콜라·마운틴듀·게토레이에, ‘크래프트’는 카프리 썬(과즙음료)·과자류·샐러드드레싱에 HFCS를 넣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HFCS가 미국인의 비만·성인병 증가에 크게 기여했다는 연구결과가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인 1인 대비 연간 HFCS 생산량은 1999년 22.6㎏에서 2008년 18.8㎏으로 감소했다. 반면 국내에선 HFCS의 1인당 연간 생산량이 2002년 8.7㎏에서 2008년 9.7㎏으로 늘었다(식품의약품안전청 통계).

 국내 식품업계에선 HFCS를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다. 탄산음료·분유·과자·젤리·물엿·조미료 등 단맛이 나는 거의 모든 가공식품에 들어간다. 요리할 때 설탕 대신 넣는 요리당, 파우치에 든 레토르트 식품, 반찬가게에서 파는 콩자반·멸치볶음 등에도 HFCS가 함유된 경우가 많다. 냉장고에 보관한 콩자반이 끈끈한 상태를 오래 유지한다면 점성이 있는 HFCS가 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HFCS는 가격이 설탕에 비해 20% 이상 저렴하고, 액상(液狀)이어서 식품에 첨가하거나 수송하기 편리한 장점이 부각돼 1970년대 초반 개발과 동시에 식품업계의 총아로 떠올랐다. HFCS가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는 의문이 제기된 것은 불과 몇 년 사이다. 미국 프린스턴대 연구팀은 HFCS를 장기간 섭취하면 체지방, 특히 복부 지방이 증가한다고 밝혀 HFCS 안전성 논란에 불을 붙였다. 그 후 HFCS가 비만·당뇨병·심장병·비(非)알코올성 지방간의 발병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결과가 잇따라 나왔다.

 HFCS는 설탕과 공통점이 많다. 둘 다 단순당이다. 먹어도 포만감이 들지 않으므로(특히 음료에 포함된 경우) 과다 섭취 우려가 있다. 당뇨병 환자의 혈당을 빠르게 요동치게 할 수 있다는 점도 닮았다.

 치아 건강에 해로운 것도 유사하다. 특히 HFCS는 치아에 달라붙는 점착성이 높아 충치를 일으키기 쉽다(한림대 성심병원 소아치과 오소희 교수).

 미국에서 HFCS가 든 식품은 제품 라벨에 표시하도록 의무화한 것은 이래서다. 반면 국내 유통 중인 가공식품의 ‘영양성분표’에선 설탕 등 당류 함량은 볼 수 있지만(의무표시 대상) HFCS가 얼마나 들어있는지는 확인이 불가능하다. 이제 우리도 HFCS의 의무 표시를 검토할 때가 됐다.

 더 큰 문제는 우리나라에선 HFCS를 액상과당·과당·옥수수시럽·콘시럽·요리당 등 업체마다 달리 표시하고 있어 소비자가 이를 잘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HFCS 표기를 통일하고 HFCS와 건강의 관계를 소비자에게 널리 알리는 방안을 모색 중”이란 식약청 박혜경 영양정책관의 말에 기대를 걸어본다.

박태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