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례를 빠지고 영화관으로 직행한 고3 수험생. 생명을 희생시키는 게 싫어 토끼 수술 실습 때 ‘산다는 게 뭔지’ 고민한 의대생. 새벽 3시까지 컴퓨터 오락을 하다 잠을 청한 뒤 오락 생각에 두 시간 만에 깬 대학원 조교. 급성 간염으로 쓰러지고도 집 안방에서 직원들과 회의를 했던 워크홀릭. 안철수 서울대 교수(49·사진)가 저서에서 밝힌 그의 과거다.
저서·강연·인터뷰로 분석한 안철수의 세계관
그는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로 주변에 자신을 소개했다. 하지만 그가 누리는 폭발적 인기에 비하면 너무 상식적이고 추상적이다. 안 교수가 그리는 대한민국의 구체적인 방향이 뭔지 알려진 게 거의 없다. 본인이 언론과의 접촉을 극구 피하고 있어 알아낼 방법도 마땅치 않다.
중앙SUNDAY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추적해봤다.
안 교수의 말과 글에선 보수나 진보 어느 한쪽으로의 일관성을 찾기 어려웠다. 두 가지가 모두 혼재해 있었다. 안 교수가 진보 좌파 쪽에 가까울 것이라는 생각은 선입견일 가능성이 크다. 성장환경이나 가족관계로 보면 오히려 우파 쪽에 가깝다.
안 교수의 부친 안영모 범천의원장은 중앙SUNDAY(11월 6일자) 인터뷰에서 “큰애(안 교수)는 좌파가 아니다”고 단언했다. 또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선 “노무현 정부 때 다 승인했는데 민주당이 왜 저렇게 반대하느냐”고 비판했다. 안 교수는 “국민학교 때 ‘부모님이 나를 간섭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한 중학생의 글을 읽고 충격을 받았고 나는 절대로 안 그래야겠다고 생각했다”(
정부와 기업에 대한 안 교수의 생각은 무엇인지, 안보관과 역사관은 어떤지, 정치적 리더십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등 우리 사회의 핵심 이슈에 대한 ‘안철수의 생각’을 집중 분석했다.
안보관=그의 저서·강연에서 북한에 관한 언급은 거의 없다. 그랬다가 지난 9월 4일 순천 청춘콘서트에서 입을 열었다. “가장 먼저 우리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란 헌법 제1조를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으로 구분해야 할 것 같다. 우리 체제를 거부하는 사람들은 아예 논외로 놔둬야 한다. 이념 논쟁 이전에 워낙 심각한 문제다. 우리 체제를 안 믿는 사람 같으면 완전히 북한 쪽으로 따라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20~30대가 투표를 많이 하면 싫어하는 사람도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이 없으니 똑같은 사람이다. 우리 체제를 안 믿는 사람들은 논외로 제외하고 나머지 정상적인 사람들 중에서 과연 이게 상식인지 비상식인지 사안별로 판단해 보자.” 그는 이날 “우리가 적화통일 (하기를) 바라는 사람도 없고 우리나라 체제를 중심으로 어떻게든 평화를 유지하면서 점진적으로 잘 해결해서 통일을 해보자는 게 많은 분들 (생각), 보수적인 생각이다”고 했다. 자신도 여기에 포함된다는 뜻이다. 그보다 이틀 전 서울대 청춘콘서트에서 안 교수는 ‘강남 좌파 아니냐’는 질문에 “강남에 살지도 않고 좌파도 아니다”고 답했다.
기업관=대기업 비판론ㆍ한계론을 계속 제기해왔다. 대기업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상대적 약자인 중소기업에 대한 불공정 관행은 경쟁력 강화에 독이 된다는 논리다. “대기업만으로 이뤄진 경제구조는 대기업 스스로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튼튼한 대기업과 건전한 중소기업이 상호보완적으로 발전해야 한다”(
정부관=안 교수는 공정한 시장 조성과 고용 창출을 정부의 주요 과제로 보고 있다. “(정부가 벤처기업을) 도와달라는 것이 아니라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을 만들어 달라’는 것”(
세계화 인식=진보 쪽과 가장 생각이 엇갈리는 대목이다. 세계화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면서 이것이 위기인 동시에 기회라고 보기 때문이다. “(의대 시절) 어느 날 잠자리에 들었는데 문득 ‘내 경쟁 상대는 세계 각국 실험실에서 일하는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이다. 내가 잘 때 미국의 경쟁자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있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에 숨이 막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세계화가 가속화되면서 한 번도 못 본 사람이 내 일자리를 뺏을 수 있는 경쟁자가 됐다. (벤처기업에서) 세계화의 위기는 반대로 해석하면 국내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하면 세계로 나가기가 그만큼 쉬워진다는 것이다.”(
정의관=그가 생각하는 정의는 진보ㆍ보수의 가치를 모두 담은 것이다. 그는 기회는 평등하게 주고, 배분은 (평등이 아니라) 공정한 게 중요하다고 본다. 그가 연봉제를 통해 설명한 내용이다. “이익의 배분은 평등하게가 아니라 공정하게 이뤄져야 한다. 평등과 공정은 다르다. 민주주의도 그러하지만 연봉을 올릴 수 있는 기회는 평등하나, 결과는 평등하지 않으며 그에 대한 보상은 평등할 수 없다. 기회를 평등하게 주되 결과 평가에선 만인이 동의할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정치 리더십=상향식 리더십이다. “예전에 나를 따르라면 사람이 다 따라갔다. 그러나 이제 리더십은 대중이 선물로 주는 것이다. 이런 커다란 흐름을 모르면 시대착오적이다.”(청춘콘서트) 그러나 안 교수는 냉정한 관리자의 면모도 있다.
역사 인식=보수의 애국심과 진보의 비판적 시각이 공존한다. 33세 때 쓴
정치 방식=그의 말과 글에 등장하는 단골 메뉴는 ‘원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