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남성들이 요즘 백화점 ‘큰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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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서울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4층의 상행 에스컬레이터 양쪽. 목 좋은 자리로 꼽히는 이곳에 남성 매장 둘이 자리해 있다. 남성 액세서리를 모아놓은 편집매장 ‘로열마일’과 남성 구두를 갖춘 ‘메이페어’다. 8월 말 동시에 문을 열었다. 본래 이곳에는 각각 수입 정장과 셔츠 매장이 있었다. 한 벌에 60만~80만원 하는 양복을 팔던 곳에 10만~40만원 제품이 주가 되는 액세서리 매장이 들어선 것이다. 모험에 가까운 선택이었고, 실제 로열마일의 첫 한 달 매출은 2900만원에 그쳤다. 하지만 얼마 안 가 고객 반응이 나타났다. 9월 6400만원으로 올라간 매출은 지난달 9200만원을 기록했다. 이달엔 1억원을 넘보고 있다. 기존 정장매장의 매출을 넘어선 결과다. 벨트·장갑·가방 등이 양복을 이긴 셈이다.

 이는 젊은 남성 고객의 힘으로 풀이된다. 올해 이 백화점의 남성 매장 매출을 분석한 결과 20·30대가 쓴 돈(48.2%)이 40·50대(38.6%)보다 많았다. 이런 역전 현상이 나타난 것은 2007년 이후 처음이다. 젊은 고객을 잡기 위해 편집매장에 공들인 덕이다. 바이어들을 1년씩 유럽에 연수 보내기도 했다. 젊은 남성들이 좋아하지만 국내에 없는 브랜드를 찾기 위해서였다. 로열마일의 이성환 바이어는 “백화점 남성 고객은 ‘양복 고객’이라는 공식이 깨졌다. 이젠 한 벌 정장보다 각종 패션 아이템을 개별 구입하는 젊은 층을 사로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주요 백화점 3사의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2~3.2% 늘어나는 수준에 그쳤다. 이 같은 불황 속에 젊은 남성 고객이 돌파구로 주목받고 있는 셈이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6층이 매출 ‘우등생’으로 떠오른 것도 같은 연유다. 10월 이곳에 남성 패션 전문관이 생겼다. 의류부터 전자제품·문구·신발 등을 한 층에서 모두 구매할 수 있게 구성했다. 10~11월 강남점 전체 매출이 11.2% 오르는 동안 이 매장은 16.5% 신장률을 보였다. 이달 6일을 기준으로 지난 한 달 동안에는 각각 12.6%, 25.9%를 기록해 남성 고객이 백화점 매출을 이끄는 점이 분명해졌다. 여기도 젊은 고객이 많다. 신세계백화점은 올 전체 남성 고객 중 30대가 31%를 차지했다고 분석했다. 롯데백화점이 서울 소공동 본점에 9일 남성구두 전문매장을 낸 것도 젊은 남성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다. 이 백화점의 전체 구매 고객 중 남성 비중은 2007년 23.6%에서 올해 26.1%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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