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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증시, 외국인 매물 받아낼 매수세력 없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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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반도체 주식이 기침을 하자 서울 증시에선 반도체는 물론이고 시장 전체가 몸져 눕고 말았다.

그동안 삼성전자.현대전자를 집중 매수하며 시장을 떠받쳐온 외국인투자자들이 반도체 주식을 팔아치우기 시작했으나 이를 받아줄 매수세력이 없자 시장이 힘없이 주저앉고 있는 형국이다.

이에 따라 이달 초 반등시도가 무산된 후 연초 이후 하락추세선으로 되돌아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주가가 하락추세선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신규자금이 증시주변으로 유입돼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 외국인의 매도공세〓국내에서는 현대건설이 금융기관의 자금지원으로 자금난 고비를 넘겼고 비과세 수익증권이 본격 판매되기 시작하는 등 악재들이 대부분 주가에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은 미국 증시에서 반도체 주가가 떨어지자 국내에서도 반도체 주식을 무더기로 팔아치우고 있다.

28일 외국인의 순매도액은 2천억원에 육박했다. 특히 삼성전자와 현대전자를 집중 매도, 지수를 끌어내렸다. 이날 삼성전자 한 종목이 끌어내린 지수하락폭은 12.3포인트에 달했다.

황창중 LG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미국시장에서 노키아 등 주요 기업의 3분기 실적이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반도체.통신주가 약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것이 국내에 그대로 전염되는 양상" 이라며 "외국인이 첨단주 중심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내놓는 매물을 국내 시장에서 받아줄 주체가 없어 하락폭이 컸다" 고 설명했다.

◇ 투신권 자금유입이 관건〓이달 초 이뤄진 많은 거래량(높은 매물벽)을 넘자면 상당한 신규자금이 있어야 한다.

현재로선 외국인이 적극적인 매수세로 돌아서길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투신권으로 자금이 얼마나 유입되느냐가 관건이다.

한국투자신탁 이혁근 차장은 "대개 투신권으로 자금이 유입될 때는 채권형에 먼저 자금이 몰리고 이에 따라 금리가 안정되면 주식형으로 확산된다" 며 "채권형 비과세 수익증권에 돈이 몰리고 있는 데 기대를 걸고 있다" 고 밝혔다.

재정경제부가 오는 10월 정기국회에서 투신의 사모(私募)펀드와 기업 인수.합병(M&A)용 공모펀드의 의결권 제한을 완화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M&A 테마를 되살릴 수 있는 조치로 평가되고 있다.

다만 이같은 조치들이 효력을 발휘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단기간에 추세반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다.

◇ 미국시장 주시 필요〓나민호 대신증권 투자정보팀장은 "기관이 체력을 회복할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만큼 당분간 외국인 동향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며 "지수는 일단 680까지 떨어지고 최악의 경우 전저점인 650까지도 내려갈 수 있어 보수적 투자전략을 유지해야 할 것" 이라고 충고했다.

투신권으로 자금이 얼마나 유입되느냐도 앞으로 조정장세에서 반드시 점검해야 할 변수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 우울한 객장〓지수 700선이 28일 오후 힘없이 무너지자 각 증권사 객장에 삼삼오오 모인 투자자들은 한숨과 허탈 속에 향후 장세를 우려하는 모습들이었다.

투자자들은 서울 증시를 지탱해 온 외국인들이 최근 팔자 공세를 계속하는 데다 현대사태와 자금시장 불안.비과세 펀드 등 관련법안의 국회처리 지연 등 악재만 드러나고 있어 하락의 끝이 어디인지 모르겠다며 초조해했다.

굿모닝증권 목동지점 객장에서 만난 주부 崔모(40)씨는 "중소형 우량주에 투자하고 있는데 외국인들의 삼성전자 매도로 다른 종목에까지 투매가 번져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면서 "여름동안은 투자를 쉬어야겠다" 며 체념하는 표정을 지었다.

대우증권 본점영업부에 계좌를 두고있는 자영업자 金모(35)씨는 "도무지 장세반전의 계기가 없는 것 같다" 며 "정부가 현대문제를 신속히 처리하고 증시를 내버려두지 않겠다는 가시적인 의지를 보여줘야 할 것" 이라고 지적했다.

장병국 LG증권 상계지점장은 "외국인의 매도와 지수하락이 어디까지 갈지 문의가 많으나 장세전망을 제시하기가 어려운 상황" 이라며 "투자자들에게 현금보유비중을 늘리고 실적우량주를 중심으로 보수적인 투자를 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고 말했다.

한편 인터넷 증권관련 사이트에도 폭락장세에 대한 분석과 투자전략을 제시하는 글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아이디가 '스테고' 인 한 분석가는 팍스넷에 올린 글에서 "지금 지수는 삼성전자와 SK텔레콤으로 인해 형성된 것으로 체감지수와는 다르다" 고 전제하고 "무차별 매도는 도움이 안되며 외국인 비중이 높은 주식은 팔되 저PER주, 자산가치 우량주는 보유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이재훈.정경민.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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