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질 못해도, 간 못 봐도 … 요리봉사, 어렵지 않아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2면

인터넷 요리봉사카페 ‘싱요사’ 봉사자들이 지난달 27일 서울 관악구 미성동에 위치한 그룹홈 ‘석류가정의 집’을 찾아가 그곳 아이들을 위해 채소?오징어?새우 등 각종 튀김과 치킨·스파게티를 만들었다. [황정옥 기자]

“튀김 만드는 거 어렵다, 어렵다, 말로만 들었는데 진짜 어렵네요.”

일요일이던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관악구 미성동에 위치한 그룹홈 ‘석류가정의 집’에서는 4시간에 걸친 ‘튀김전쟁’이 벌어졌다. 인터넷 요리봉사카페 ‘싱요사’의 신림동팀이 그룹홈 아이들을 위해 특별식을 만들어주러 온 날이다. 이날의 메뉴는 채소·오징어·새우 등의 각종 튀김과 치킨, 그리고 스파게티. 봉사자로 나선 8명 모두 의욕은 충만했지만 대부분 요리초보자들이라 재료를 다듬고 썰고 튀기는 데 오후 한나절이 꼬박 걸린 것이다.

싱요사는 2003년 혼자 사는 사람들의 요리 정보 공유 카페로 문을 연 뒤 요리 봉사를 시작, 현재 1만5000명이 가입한 국내 최대 규모의 요리봉사 카페다. 지역별, 팀별 주재자가 봉사 장소와 일정을 공지한 뒤 홈페이지(cafe.naver.com/scook/)나 트위터로 참가 신청을 받는다. 누구나 1만5000원의 음식재료비만 내면 참여할 수 있다. 참가 인원과 메뉴는 방문시설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진다.

이날 신림동팀이 찾아간 (사)들꽃청소년세상 석류가정의 집은 초등~고등학교 남학생 5명이 거주하는 그룹홈이다. 그룹홈이란 보호가 필요한 아동·청소년·노인·장애인 등을 소수로 묶어 가족적인 환경 속에서 지내며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시설이다. 싱요사 신림동팀은 2009년부터 벌써 3년째 매달 넷째 주 일요일마다 석류가정의 집을 찾고 있다.

튀김이 어렵다던 우수영(26·여·경기도 안양·회사원)씨는 이날이 세 번째 참가다. 우씨는 “주말에 할 수 있는 봉사를 찾다가 싱요사를 알게 됐어요. 저뿐만 아니라 다른 분들도 ‘봉사’라는 생각보다는 그룹홈 동생들이랑 같이 맛있는 음식 해먹고 함께 노는 날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아이들도 봉사자들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친누나·친형처럼 따른다. 막내 경헌(10·초등 4)이는 튀김반죽도 같이 하고, 그룹홈 부엌 세간에 어두운 봉사자들을 위해 조리도구도 찾아다 준다. 평소 형들이 학교에서 늦게 와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은 경헌이에게 싱요사팀이 오는 날은 친척들로 북적대는 명절 같다.

양손 가득 장바구니를 들고 온 봉사자들은 각자 역할을 분담해 재료 손질을 시작했다. "그동안 요리 해본 적이 없는데 와서 직접 해보니까 재밌어요.” 김지윤(23·여·서울 관악구 신림동·중앙대 국악과 4)씨는 서툰 솜씨지만 열심히 새우 내장을 뺐다. 은대광(25·서울 강남구 역삼동·자영업)씨는 여자친구와 함께 봉사에 참여했다. 은씨는 “데이트할 시간을 따로 내기보다, 이렇게 와서 함께 봉사하는 게 어느새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봉사팀의 리더 고경준(31·서울 관악구 신림동·서울대 전기컴퓨터공학 박사과정)씨는 “우리는 요리를 잘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다. 칼질이 서툴고 경험이 없어도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재료 밑손질이 끝나자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본격적으로 튀김요리를 시작했다. 튀김팬 주위에 둘러앉은 봉사자와 아이들 사이엔 금세 이야기꽃이 폈다. 이날의 주요 관심사는 내년에 대학 진학을 하는 지태(18·고등 3)와 태규(18·고등 3) 이야기였다. 그동안 건넌방에서는 고경준씨가 중학교 3학년인 태우와 진수에게 수학공부 등을 가르쳐줬다.

4시간에 걸친 요리가 끝나고 드디어 상이 차려졌다. 식사가 끝난 후에는 함께 설거지와 뒷정리 하는 것으로 이날의 봉사가 마무리됐다. 고승조(23·여·서울 금천구 가산동·프리랜서 국악인)씨는 “아이들에게 더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싶은데 아직까지 실력이 모자라서 안타까워요. 초밥 같은 것도 해주고 싶은데 아직은 안 되겠죠?”라며 아쉬워했다.

이날은 싱요사에서 신림동팀 외에도 전국 각지의 7개팀이 요리봉사를 펼쳤다. 카페운영자인 이성진(41·프리랜서 IT프로그래머)씨는 “서너명만 모이면 그룹홈처럼 소규모 시설 친구들에게 밥 한끼를 선물 할 수 있다. 요리도 배우면서 나눔을 실천할 수 있다는 게 요리봉사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글=손지은 행복동행 기자
사진=황정옥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