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백건우-파리오케스트라 협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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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2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피아니스트 백건우(65)와 파리오케스트라의 협연이 이뤄진 이날은 20분의 인터미션(중간 휴식시간)보다 커튼 콜 시간이 더 길었다. 콘서트홀을 가득 채운 관객들은 파리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파보 예르비(Paavo Jrvi)를 8번,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무려 6번이나 다시 무대로 불러냈다. 박수 소리는 커튼 콜이 거듭될수록 뜨거워졌다. 파리 오케스트라가 3번째 앙코르곡인 비제의 아를의 여인 중 파랑돌(Farandole) 연주를 마치고서야 관객들의 박수 소리가 잦아들었다.

 파리오케스트라와의 국내 협연이 처음인 백씨는 최근 인터뷰에서 “환상교향곡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는 많지만 (파리 오케스트라처럼) 프랑스의 맛을 살리긴 쉽지 않다”며 예르비 등을 치켜세운바 있다. 그도 그럴 게 1967년 창단된 파리 오케스트라의 초대 음악감독 샤를르 뮌슈는 음악계에서 ‘베를리오즈 전문가’로 불린다. 파리오케스트라는 이날 공연에서 초대 음악감독의 명성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 같은 연주를 들려줬다.

 피아니스트 백씨와 예르비는 슈만의 피아노 콘체르토 a minor(Op. 54) 연주에서 환상적인 호흡을 보여줬다. 31분 동안 이어진 연주에서 예르비는 20번이나 백씨의 건반을 내려다보면서 호흡을 맞췄다. 피아니스트도 오케스트라도 앞서 가지 않았다. 이날 슈만 연주를 처음으로 선보인 백씨는 6번의 커튼콜을 받고 관객들에게 인사했다. 백씨가 슈만의 피아나소나타 f# 단조 3악장을 앙코곡으로 연주하자 관객들은 2분 동안 기침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조용하게 연주에 귀를 기울였다.

 예르비는 이날 공연을 마치고 이례적으로 공연 관계자들에게 “보관용 녹음 파일을 복사해 달라”고 했다고 한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이란 말이 무엇인지를 그대로 보여준 무대였다.

강기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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