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과 벤처의 동거…아시아비투비벤처스 박지환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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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사용자 위주(user friendly)로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느냐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SK, 현대산업개발, 코오롱, 삼보컴퓨터, 시사영어사, 종근당 등 국내 11개 그룹과 미국계 다국적 기업 컴퓨터어소시에이츠 등 총 16개 기업이 공동 설립한 기업간 전자상거래(B2B)분야 컨소시엄인 아시아비투비벤처스의 박지환 대표(32)의 말이다.
사실 전자 상거래를 표방하는 기업이면 어느 곳이나 B2B를 표방해 B2B에 관한 한 실체는 없고 말만 무성하다는 얘기도 많다. 또 액티브미디어 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올해 B2B기업의 50%만이 흑자를 낼 것이라는 조사도 있다. B2C기업의 경우 69%가 흑자를 낼 것이라는 전망에 비해 다소 비관적인 시각이 엄연히 존재한다. 하지만 박사장은 “B2C에 비해 거래의 규모가 크고, 표준화가 더디기 때문에 아직 제대로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지만 1∼2년 내에 엄청난 폭발력을 가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누구나 B2B가 전자상거래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데는 동의하죠. 하지만 말만 무성하고 제대로 수익을 내지 못하는 것은 아직 기업(사용자)들이 편안하게 사용할 만한 환경을 만들어 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시아비투비벤처스는 단순히 B2B사이트만 운영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E허브’- 박사장이 생각하는 아시아비투비벤처스의 모습이다. 기존의 E마켓플레이스는 공급자와 구매자, 오프라인 기업 등을 구성 요소로 일종의 중개인 역할을 하는데 그쳤다면, E허브는 이밖에도 기술 및 소프트웨어 회사, 인프라 지원 및 시스템 구축, B2B에 대한 컨설팅 및 인큐베이팅 등을 함께 하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즉 이미 대기업에서 홍보나 회계 등을 아웃소싱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B2B거래에 관한 한 아시아비투비벤처스가 아웃소싱을 하겠다는 뜻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박사장은 일본·호주에서 중·고교를 마치고 아이비리그 명문인 브라운대학을 졸업한 뒤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했다. 아직은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이 더 편하다는 박사장은 인터뷰 중간중간에도 핵심개념은 영어로 설명하는 실례(?)를 자주 범했다. 골드먼 삭스 본사에서 투자은행 업무를 경험한 뒤 외환위기 직후인 98년 국내에 들어와 임원으로 근무하면서 국내 대기업의 구조조정을 중개, 자문한 경력도 있다.
재벌과 벤처의 결합이라는 색다른 조합 때문에 언론의 주목을 많이 받은 그에게 재벌이 벤처업계까지 독식하는 것이 아니냐는 물음을 던졌다. “제가 아이템을 내고, 사업 설명서를 들고 개별 기업을 찾아가 설득했습니다. 재벌기업이 출자한 회사에 제가 경영자로 초대된 것이 아니라 제가 설립한 회사에 대기업을 초대한 거죠.” 중립성과 능력만 입증된다면 여전히 아시아비투비벤처스가 B2B사업을 주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한국의 경우 2세 경영인을 중심으로 한 최고 경영자들이 인터넷 비즈니스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B2B분야의 발전속도가 미국보다 더 빠르게 진행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 기업문화의 특성상 톱다운(Top-down)식의 변화가 잘 전달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어떻게 재벌 2세와 만났는지 궁금했다. “인터넷 비즈니스라는 바닥이 좁기 때문에 여기서 일하다 보면 자연스레 만나게 된다”는 게 그의 대답이다. 물론 맥킨지, 골드먼 삭스에서 일한 경험과 미국 유수의 대학을 나온 것도 하나의 접점이 됐다. 요즘도 2세 경영인들과 만나 서로 사업에 대해 논의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개인적인 관계나 연줄에 의한 것으로는 보지 말아달라고 주문했다. 사업은 사업일 뿐이라는 게 박사장의 지론이다.
이석호기자
이코노미스트 제5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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