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프랜차이즈 History (1) - 시애틀 매리너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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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주의 중심지인 시애틀에 처음으로 빅 리그 팀이 생긴 것은 1969년이었다. 1961년부터 메이저 리그에서는 팀 증설 붐이 시작되었고, 이에 시애틀 시도 동참하여 시애틀 파일러츠라는 팀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팀은 곧 워싱턴 주를 떠나야 했다. 이는 시대적 상황 때문이었다.

위스컨신 주의 밀워키에 자리잡고 있던 브레이브스가 1965년 시즌을 마친 뒤 애틀랜타로 옮겨가자 밀워키 시민들의 반발이 거세게 일어났고, 결국 위스컨신 주가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메이저 리그는 이를 무마하기 위해 밀워키를 연고지로 하는 팀을 만들어야 했다.

결국 파일러츠는 단 한 시즌만을 시애틀에서 치른 뒤 곧바로 밀워키로 옮겼고, 팀 명칭도 '밀워키 브루어스'로 바꾸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시애틀 시가 들고 일어나 소송을 제기했다.

AL은 또다시 이를 수습하는 데에 나서야 했고, 결국 시애틀을 연고지로 하는 팀이 다시 탄생했다. 1977년 토론토 블루 제이스와 함께 처음으로 AL에 참여하게 된 이 팀이 시애틀 매리너스이다.

첫 시즌에 매리너스는 64승 98패라는 부진한 성적으로 AL 서부 지구에서 6위에 그쳤다. 이후 부진이 계속되었고, 90년까지 단 한 차례도 승률 5할을 넘기지 못했으며 뚜렷한 스타도 배출하지 못했다.

다만 해럴드 레널즈가 1987년에 리그 도루 부문 수위에 오른 데에 이어 1988년부터 1990년까지 2루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3연속으로 차지하였고, 마크 랭스턴이 1984년과 1986~1987년에 탈삼진 부문 타이틀을 따내어 팀의 체면을 세웠을 뿐이다.

그러나 1990년대가 되자 매리너스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1987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지명되었던 외야수 켄 그리피 주니어가 1989년 마이너 리그에서 올라왔고, 그는 기대대로 최고의 스타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1989년에 마크 랭스턴과 마이크 캠벨을 몬트리올 엑스포스에 보내고 랜디 존슨을 비롯한 3명의 투수를 데려왔는데, 이 트레이드는 훗날 매리너스에 큰 성공을 안겨 주었다.

1991년 매리너스는 83승 79패로 시즌을 마감하여, 최초로 5할이 넘는 승률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 시즌을 마친 뒤 매리너스가 관심의 초점이 된 것은 성적 때문이 아니었다. 팀이 외국 기업으로 매각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이 문제를 놓고 찬-반 양측이 대립하게 된 것이다.

경영난에 시달리던 매리너스는 이전부터 플로리다 주로 연고지를 이전하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애틀 시의 유력 인사들은 팀이 계속 머물기를 원했고, 결국 시애틀에 미국 현지 법인을 둔 일본의 게임기 제조 회사 닌텐도에 구단을 매입할 것을 요청했다.

이를 미국 야구의 자존심과 관련된 문제로 간주한 일부 정치인들이 강력히 반발하였으나, 결국 1992년 초에 구단주 회의에서 당시 존재하던 26개 구단 중 18개 구단의 소유주가 찬성하여 매각안이 승인되었다.

격동의 해인 1992년에 매리너스는 당시 3루수로 활약하던 에드가 마르티네스가 리그 타격왕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지구 최하위로 추락했다. 그러나 이듬해 매리너스는 존슨이 308탈삼진과 19승이라는 호성적을 올리고 그리피가 45홈런을 친 데에 힘입어, 다시 5할이 넘는 승률로 시즌을 마감하였다.

파업으로 시즌이 단축된 1994년에 그리피는 40개의 홈런을 날려, 이 부문 3연패를 노리던 텍사스 레인저스의 후안 곤살레스를 밀어내고 처음으로 리그 홈런왕에 올랐다. 이 시즌이 중단된 시점에서 매리너스는 51승 63패를 기록하고 있었으나, 지구 수위였던 레인저스를 1경기 차이로 추격하는 중이었다.

1995년 매리너스는 최초로 AL 서부 지구를 제패하여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다. 랜디 존슨은 18승 2패와 2.48의 방어율을 기록하며 사이영상을 거머쥐었고, 마르티네스는 3년만에 다시 리그 타격왕에 올랐다.

매리너스는 뉴욕 양키스와 대결한 디비전 시리즈에서 원정 경기로 벌어진 1~2차전을 모두 내 주었으나, 홈에서 3연승을 거두어 극적으로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 진출하였다. 상대는 막강 타선을 앞세운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였다.

시리즈 1차전에서 매리너스는 예상을 뒤엎고 무명인 밥 울코트를 선발로 내세웠고, 그의 호투로 1차전을 따냈다. 그러나 이후 전력의 열세를 드러냈고, 결국 오럴 허샤이저가 2승을 올린 인디언스에 월드 시리즈행 티켓을 내 주어야 했다.

1996년에 존슨은 부상으로 5승에 그쳤고, 이는 매리너스의 전력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 그리피와 마찬가지로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지명된 신예 유격수 앨릭스 로드리게스가 .358의 타율로 타격왕에 오르며 MVP투표에서 2위에 올랐으나, 팀은 지구 2위에 머물렀다.

1997년 매리너스는 다시 맹위를 떨치며 지구 정상을 탈환했다. 타선의 핵은 홈런과 타점 부문 1위에 오르며 기자단 투표에서 만장일치로 MVP에 뽑힌 그리피였으며, 제이 뷰너와 로드리게스 등도 맹타를 휘둘렀다. 이 해에 매리너스가 기록한 264홈런은 역대 한 시즌 팀 최다 홈런 기록이었다.

그러나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맞붙은 디비전 시리즈에서 에이스 존슨은 2패만을 기록했고, 결국 매리너스는 1승 3패의 전적을 남기며 물러났다.

1998년 존슨은 팀과 연봉 문제로 마찰을 일으켰고, 결국 시즌 중반에 프레디 가르시아 등과 교환되어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떠났다. 이후 매리너스는 그리피와 로드리게스 등의 꾸준한 활약에도 불구하고 부진을 면하지 못하였다. 1999 시즌이 끝난 뒤 그리피마저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시켰다.

그러나 매리너스는 부실했던 투수력을 보강하여, 다시 일어설 채비를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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