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억 들어간 기술, 중국에 넘긴 연구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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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국내 기업들이 보유한 차세대 디스플레이의 핵심 기술을 빼내 중국 기업에 넘긴 연구원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경기지방경찰청 산업기술유출수사대는 자신이 다니던 회사의 기업 비밀을 중국 업체에 유출한 혐의로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SMD) 책임연구원 이모(36)씨와 LG디스플레이 연구원 김모(37)씨에 대해 1일 구속했다.

 이들은 액정표시장치(LCD) 관련 최신 기술과 5.5세대 아몰레드(AMOLED·능동형유기발광다이오드) 제조 기술이 담긴 기업 비밀을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또 이들에게 자료 유출을 요구한 중국 디스플레이장비 제조업체 B사 연구원 김모(39)씨를 구속하고 B사를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기술유출범죄 혐의로 외국 업체를 입건한 것은 처음이다. 이들의 기술 유출은 지난해 말 국가정보원 첩보망에 처음 포착된 뒤 경찰 수사로 드러났다.

 이씨는 지난해 12월 하이디스(하이닉스 분사 회사)와 삼성에서 함께 일하다 B사로 이직한 김씨로부터 옥사이드(Oxide)-TFT 공정기술 자료를 빼내 달라는 요구를 받고 관련 자료를 넘겨준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는 자료를 종이에 옮겨 적어 보안검색대를 통과한 뒤 추적을 피하려고 다른 사람의 e-메일 계정을 이용해 김씨에게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이씨는 지금보다 두 배 가까운 연봉을 받는 등 근무 여건이 좋다는 김씨의 말을 듣고 B사로 이직하려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밝혔다.

 이씨가 빼낸 기술은 삼성이 4년 동안 최고의 연구인력 30여 명을 투입한 차세대 핵심 기술이다. 개발비는 수천억원으로 추산되고 있다. 삼성 외에 LG와 일본의 샤프가 연간 수조원의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이 기술을 먼저 확보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유출된 기술은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 고해상도 가전제품과 휘어지는 패널 등 미래형 디스플레이를 구현할 수 있는 핵심 기술”이라며 “아직 상용화되진 않았지만 예상 시장규모조차 비밀에 속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고 말했다. 삼성은 이씨를 해고하기로 하고 징계 절차를 밟고 있다.

 또 LG디스플레이 연구원 김씨는 회사가 작성한 5.5세대 아몰레드 제조기술이 담긴 사업계획서를 지난 1월 스마트폰 카메라로 촬영해 e-메일로 B사 김씨에게 넘겨준 것으로 드러났다. 5.5세대 아몰레드 제조 기술은 현재 양산 중인 4.5세대에 비해 제조 원가를 절반 가까이 줄일 수 있는 것으로 김씨가 유출한 자료에는 공정도와 제품 원가 등 내부 비밀이 들어 있었다. 경찰은 B사가 김씨로부터 넘겨받은 자료를 사업계획에 사용했는지를 수사하고 있다.

이승용 경기청 산업기술유출수사대장은 “디스플레이 시장은 올해 42억 달러(4조5000억원·아몰레드 기준)에서 내년에는 86억 달러 규모로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원=유길용 기자

◆옥사이드 TFT 기술=디스플레이 화소를 구동하는 내부 회로를 현재의 아머퍼스 실리콘 대신 옥사이드(산화물) 반도체로 형성하는 기술. 향후 투명·플렉서블 디스플레이(휘어지는 액정화면)를 제작하는 기초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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