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이란, 심각한 결과 있을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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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난달 29일 이란 주재 영국 대사관에 난입한 이란 시위대가 대사관 내부를 뒤지는 모습. 국제이란사진통신사가 배포한 사진이다. [테헤란 AP=연합뉴스]

서방과 이란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영국의 제재에 분노한 이란 청년들이 테헤란 주재 영국 대사관을 습격한 사건의 후폭풍이다. 영국 정부는 이란 주재 대사관의 전 직원을 철수시켰다. 노르웨이 정부도 30일 “안전상의 이유로” 이란 주재 대사관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미국뿐 아니라 이란을 감싸던 러시아·중국까지 이란 정부를 비난하고 나섰다.

 윌리엄 헤이그 영국 외무장관은 사건 직후 성명을 통해 “향후 추가적인 심각한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로이터 통신 등 외신은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영국이 이란 주재 대사관의 전 직원을 철수시켰다고 보도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란 정부는 이번 사건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의 잘못을 추궁하라”고 요구했다. 세계개발원조총회 참석차 방한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30일 부산에서 “국제사회에 대한 모욕(affront)”이라고 비난했다.

 독일은 이번 사건을 규탄하기 위해 독일 주재 이란 대사를 소환했다. 알랭 쥐페 프랑스 외무장관은 “이란 정권이 국제법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러시아는 “(이번 공격은) 비난받아 마땅한 행위”라고 비판에 동참했다. 중국 외교부 훙레이(洪磊) 대변인은 30일 정례 브리핑에서 “이번 충돌은 국제법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앞으로 이번 사건이 마땅히 타당한 방식으로 처리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1979년 미국과 이란의 국교 단절로 이어졌던 미국 대사관 점거 사건을 연상시킨다. 당시 이슬람 과격파 학생들은 미국 대사관을 점거하고 52명의 외교관을 444일간 인질로 잡았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현 이란 대통령은 대학생 시절 이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이란 정부는 유감을 표시하면서도 영국 대사관 피습이 정부와 무관한 일이라고 해명했다. 이란 외무부는 성명을 통해 “관계 당국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이번 사건에 대한 조사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반관영 뉴스통신 파르스는 이란 경찰이 북쪽 대사관 건물에 난입한 12명을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이날 이란 청년 시위대 수십 명은 대사관에서 탈취한 서류들을 불태웠다. 또 국기게양대의 영국 국기를 끌어내리고 이란 국기를 내걸었다. 한 학생이 대사관에서 약탈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초상화를 들고 건물 외벽을 올라가는 장면도 포착됐다. 이번 습격은 영국이 지난달 21일 핵개발 의혹을 받고 있는 이란에 대한 추가제재 차원에서 양국 금융기관 간 거래를 전면 중단한 데 따른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번 사태에 대해 워싱턴포스트는 "영국대사관 습격 배후에 이란 정부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허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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