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서소문 포럼

이종욱과 이태석 신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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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채인택 논설위원

29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부산에서 열리는 국제개발원조총회는 여러모로 뜻 깊다. 원조받는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성장한 한국에서, 그것도 원조물자 하역항이던 부산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주최 측은 태평양 도서국가와 아프리카 내륙국가의 기아 해결과 의료지원 방안을 ‘부산 이니셔티브’라는 이름으로 제안할 예정이다.

 그 구체적인 방법은 태평양 섬과 아프리카 내륙의 개발도상국 현장에서 의료봉사 활동을 펼쳤던 한국인 의사 두 사람이 제시하고 있다. 1981년부터 2년간 사모아섬에서 한센병 환자를 돌봤던 이종욱(1945~2006) 전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과 2001년부터 7년간 남수단의 오지 톤즈에서 주민들을 보살폈던 이태석(1962~2010) 신부다.

 한국인으론 처음 유엔기구 수장에 올랐던 이 전 사무총장이 WHO에서 일하게 된 계기가 바로 이 현장 활동이었다. 83년 남태평양 피지의 한센병 자문관으로 WHO에 들어간 그는 그 뒤 23년간 일하면서 결핵·소아마비 등을 예방하는 백신접종 사업을 펼쳐 성과를 거뒀다. 현장 경험이 그를 국제보건행정 전문가로 이끌었다.

 그의 이름을 딴 ‘이종욱-서울 프로젝트’가 모교인 서울대 의대에서 9년 일정으로 진행 중이다. 개도국 의대 교수들을 데려와 최신 의료기술을 전수하는 의학교육 원조사업이다. 지난 21일 이 학교에선 첫 연수 대상인 라오스 국립의대 교수 8명의 수료식과 장비 기증식이 열렸다. 라오스 교수들은 한국에서 배운 의술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자국 의료수준을 높이게 된다. 서울대 의대는 이를 위해 의료장비와 교육기자재도 지원한다. 한국 의료진이 직접 현지에 가서 봉사진료를 하는 것이 한끼를 때울 물고기를 나눠주는 것이라면, 이종욱-서울 프로젝트는 스스로 물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낚시법을 가르치는 자립 프로그램이다.

 더욱 뿌듯한 일은 이 연수가 55~61년 미국이 진행했던 ‘미네소타 프로젝트’로 서울대 의대가 선진의료기술을 전수받았던 경험을 되살렸다는 점이다. 아울러 당시 받았던 혜택을 개도국 지원을 통해 갚는 것이기도 하다. 이 프로젝트에 따라 서울대 의대 교직원 77명이 4개월~4년간 미국 미네소타대에서 연수했고 미네소타대 교수 114명이 서울대에 자문관으로 파견돼 가르쳤다. 이 77명 가운데 4명을 제외한 73명이 돌아와 후진을 양성했다. 미국이 단순 의료원조를 넘어 의학지식을 원조한 효시다. 해외 의료원조 사례 가운데 최우수상 감이기도 하다. 50년이 지난 지금 눈부시게 성장한 한국의 의료기술이 그 근거다. 당시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UCSF)가 인도네시아, 인디애나대가 파키스탄, 일리노이대가 태국의 의료진을 각각 맡았으나 상당수가 미국에 주저앉는 바람에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과 비교된다.

 이태석 신부도 생전에 톤즈 청년들을 한국에 데려와 의사로 키우려고 했다. 지난 23일 이 신부의 이름을 딴 이태석상 첫 수상자로 뽑힌 외과 전문의 이재훈씨도 마찬가지다.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에서 봉사 중인 그는 이동 진료팀을 이끌고 매월 1주일씩 무의촌을 찾고 있다. 현지에서 ‘부시맨 닥터’로 불린다는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팀이 갈 수 있는 마을은 1년에 10곳 남짓이다. 모든 무의촌을 가려면 200년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동진료 의사 100명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마다가스카르 현지인 의사 100명을 길러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들을 가르칠) 교육 프로그램과 교수들, 병원이 필요하다.”

 이종욱 프로젝트도, 이태석 신부도, 마다가스카르의 ‘부시맨 닥터’도 한결같이 개도국 원조의 주안점을 물고기에서 낚시법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부산 국제개발원조총회의 방향을 이러한 현장의 목소리보다 더 정확히 알려주는 건 없을 것이다.

채인택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