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프로야구] 살신(殺身)의 일본야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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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 후반 니시데쓰 라이온즈(세이부의 전신)의 일본시리즈 3연패를 이끌었던 이나오 가즈히사의 별명은 철완투수였다. 1956년 프로에 데뷔한 이나오는 신인의 몸으로 팀의 후반 27경기 중 20경기에 등판해 13승을 따내며 팀을 일본시리즈에 진출시켰다.

일본시리즈에서도 이나오는 6차전 전경기에 등판하며 3승을 따내 팀의 첫 우승을 이끌었다. 니시데쓰가 56,57년에 이어 58년,3년연속우승에 도전할 때 이나오는 별명그대로 철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즌막판 31경기에 등판해 17승을 올리며 팀을 3년연속 일본시리즈에 진출시키고 시리즈에서도 3년연속으로 만난 요미우리를 맞아 7차전 중 6경기에 등판해 4승을 혼자 거두며 니시데쓰의 대역전우승을 일궈냈다.

특히 58년 시리즈에서의 이나오는 3,4차전 완투, 5차전 구원 7이닝 다시 6,7차전 완투를 해내는 정말 믿기지 않는 역투를 해냈다.

1959년 난카이(다이에의 전신)의 첫 우승을 이끈 스기우라 다다시역시 그해 일본시리즈에서 고무팔피칭을 보여주었다.

스기우라는 1차전 완투,2차전 구원승,3차전 10회완투,4차전 완봉으로 팀의 4승을 혼자 책임지며 시리즈에서 요미우리를 완파했다. 이 시리즈 4경기에서 혼자 32이닝을 던진 스기우라는 3차전에서 손가락 물집이 터지는 부상에도 불구하고,3,4차전 완투를 해내는 실로 초인적인 괴력을 발휘한다.

일본에서 이런 초인투(超人投)신화는 옛날 얘기만은 아니다. 1998년 여름철 고시엔에서의 마쓰자카 다이스케(세이부)또한 경이의 투구를 보여준다.

요쿄하마高의 에이스였던 마쓰자카는 예선 두경기 완투에 이어,8강에선 연장 15회동안 공250개를 던지며 완투승을 해낸다. 4강에서도 세이브를 따낸 마쓰자카는 이에 그치지않고 결승에서 노히트노런을 하며 모교의 봄,여름 고시엔 동시제패를 이뤄낸다. 고등학교시절 마쓰자카의 전적은 37경기등판중 32승0패에 28완투.

위의 대투수들은 불굴의 근성과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팀우승이라는 위업을 이뤘다. 위의 투수들의 업적을 부정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나,이들의 피칭은 분명 팀을 위한 혹사라 할수 있다.

미국(특히 현대로 올수록)같으면 우승을 못할지언정 이런 연투는 절대로 시키지 않는다.(설령 시킨다고 하더라도 미국투수들은 절대 않할 것이다.)

굳이 위의 극단적인 경우를 들지 않더라도,평균 일본투수들의 경기당 투구수는 미국이나 한국보다 많다. 미국이 선발투수의 투구가 100개를 넘어가면 대부분 셋업으로 교체하는데 비해,일본에선 120개정도는 기본이고 상황에 따라 150개이상을 던지는 경우도 가끔 있다.

이를 지시하는 코칭스테프야 그렇다 치더라도 일본 투수들 또한 이를 당연하게 생각한다.그들에게 있어서 팀(조직)이 어려운데,자신의 몸을 아끼는 건 용납이 안되는 조직우위문화가 의식에 뿌리박혀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주니치 마무리였던 선동열이 99년 허벅지 근육통 때문에 시범경기등판을 기피하자,주니치 코칭스테프는 선동열이 마무리에서 제외될수도 있다며,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적이 있다. 선동열은 시범경기에서 무리하다 부상이 악화돼 정규시즌을 망칠까봐 등판을 않한 것인데,호시노감독은 몸을 사린다해서 불쾌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이상훈은 99년 주니치 리그우승후 곧바로 메이저行을 선언한 뒤 공교롭게도 어깨부상을 당했다. 그리고 주니치는 일본시리즈 엔트리에서 이상훈을 제외시켜 버렸다.

그들은 이상훈을 조직의 큰일(일본시리즈)을 앞두고 메이저진출 선언이라는 개인의 목표만을 추구하는 팀에 쓸모없는 선수로 생각했고,이상훈의 어깨부상역시 미국진출 때문에 몸을 사리는거라 판단하고 미련없이 엔트리에서 빼버린 것이다.

위의 이나오,마쓰자카등의 예를 보듯이 일본야구는 팀을 위해 온몸을 던지는 살신(殺身)의 야구를 미덕으로 생각한다.그래서 그런지 일본야구에선 전성기때 혹사당하는 투수가 많다.실제로 일본의 일급투수들치고 나이들어서 부상이나 혹사후유증에 시달리지 않는 경우가 거의 없다.

미국야구가 최대한 선수를 보호하는 선수위주의 미래지향적 야구를 추구하는 반면,일본야구는 바로지금의 승부에 모든 걸 걸고 선수는 팀승리를 위해 살신하는 현재지향적 조직야구를 한다고 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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